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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흐르면 2018년 11월 2일 극적으로 한국시리즈를 밟은 SK 와이번스만 기억될 지 모른다. 패자는 세월 속에 더 빨리 잊혀지는 법.
이날 경기를 지켜본 타팀 관계자들은 새삼 넥센이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더 무서워질 것"이기에 더 긴장된다고 했다. 리그 최연소팀(베스트 나인 25.7세)인 넥센의 패기와 에너지 때문이었다.
절체절명인 플레이오프 5차전에 넥센은 1990년대생을 대거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 김하성(23) 송성문(22) 서건창(29) 박병호(32) 제리 샌즈(31) 임병욱(23) 김규민(25) 김혜성(19) 주효상(21) 중 90년대생은 9명 중 서건창 박병호 샌즈를 제외하고 6명. 국가대표 중견수 이정후(20)의 어깨부상 공백은 김규민이 메웠다. 토종 에이스 최원태(21)가 빠졌지만 마운드에선 최고 154km를 선보인 안우진(19)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젊은 그들'은 아직 영글지 않았다. 김혜성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치명적인 수비실책을 했다. 0-0에서 선취 3득점을 한뒤 6회말 송구실책으로 로맥의 3점홈런, 이어 추가 3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넥센으로선 뼈아픈 장면이다. 하지만 아픔은 성장의 동기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실책이지만 젊기에 상처는 더 빨리 치유될 것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힘겨운 순간 희망도 봤다. 곧바로 다가서 용기를 건넨 '작은 형' 김하성의 손길은 젊지만 단단한 넥센의 팀워크를 보여줬다.
박병호와 서건창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차츰 성장한다면 넥센은 더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주축이 돼 가을야구 10경기를 치러낼 정도면 향후 5년, 10년은 걱정이 없다.
넥센은 자의반, 타의반 내부육성, 인재발굴의 길을 걸었다.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자생구단의 한계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저비용-고효율, 미래지향적 선수단을 꾸리게 됐다.
내부 육성, 리빌딩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무한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일단 리빌딩을 시작한뒤 중도에 그만두면 허사다. 버텨야하는 수년간 몇 명의 단장과 감독이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넥센을 부러워하는 시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