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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봉중근의 말은 차분했다. 따뜻했다. LG에 대한, 팬들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었다.
LG 유니폼을 입고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2013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 당시 두산에 승리하며 2위를 확정지었고, 그때 마무리 투수가 봉중근이었다. "그때 모든 선수단이 울었다. 그땐 정말 우리가 우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라고 했다. 국가대표로서도 맹활약을 했던 봉중근은 2009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1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1회 스즈키 이치로와의 대결을 앞두고 심판과 얘기를 나눴던 추억도 말했다.
'봉크라이', '봉미미' 등의 별명에 대해서도 팬들의 관심이라며 감사함을 표한 봉중근은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봉의사'를 꼽으며 "대대로 이어질 영광스런 별명"이라고 했다.
두번 정도 수술을 했었다. 나이가 걸림돌이었지만 재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 나이에 수술하고 재기에 성공하면 후배들이 고참이 됐을 때 용기를 내고 더 오래 야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확실히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다. 이번 해가 가장 힘들었다. 라이브 피칭까지 마쳤고 자신감을 얻어서 경기에 나설까 했는데 재발했다.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평생 야구를 해왔는데, 7월 즈음 준비를 마쳤는데 내 스스로 더 버티는 것보다 엔트리 하나라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했나.
길거리에 다니다보면 팬들이 많이 계시더라. '고생했다', '고마웠다'고 해주시는데 죄송스러웠다. 스스로 은퇴 결정을 했는데, 많은 선배님들이 후회하지 말라고 하셨다. 2년 간 팀에 한 게 없다고는 해도 할 만큼 했다, 미련 갖지 말고 다시 잘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용기를 많이 주셨다.
-봉중근이 꿈꾸는 제2의 인생은 무엇인가.
평생 야구 일을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LG를 너무 사랑했고, 이상훈 코치님을 보며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LG에 많은 의미가 남아있다. 앞으로도 평생 LG를 사랑하며 야구 쪽에서 큰 꿈을 이루고 싶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LG에 아직 있고, 은퇴식은 하지만 구단과 대화를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구단에서 배려를 너무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많은 선수들이 은퇴하고 야구장을 떠날 때 안타깝게 가는 선수들이 많다. 구단에서 은퇴에 대해 몇 번 만류해주셨고, 앞으로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하자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 지금은 결정된 것은 없다. 시즌 끝나고 다시 한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승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 부분이 아쉽지 않나.
▲아쉽다. 이병규 코치님 은퇴하는 모습을 당시 수술하고서 미국에서 봤지만 그런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다. 내게 그 순간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프로에서 야구를 하다보면 목표가 우승 아닌가. 한번 해 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팬 분들께 가장 죄송스럽다. 운동은 안 하지만 분명히 다른 부분으로 LG가 우승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고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LG 유니폼 입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입단 할 때가 생각난다. 시즌 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2013년 10월 5일 최종전을 두산과 치렀는데 한국시리즈 우승한 분위기였다. 선후배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이 다 울었다. 그때 우승할 거라고 믿었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LG에 있으면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그 날이었던 것 같다.
-국가대표로서도 많은 활약을 했는데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
LG도 평생 잊지 못할 팀이지만, 대표팀은 누구나 욕심이 난다. 태극마크를 달고 온 국민이 보는 경기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몸이 좋다면 아직도 욕심이 난다.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큰 경기를 치렀는데, 국가대표는 인생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WBC 때 이치로 타석 때 심판에 어필을 한 것 기억이 나는가.
당연히 기억이 난다. 심판에게 영어로 "Too much flash"라고 했었다. 경기전부터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했었다. 포수가 박경완 코치님이었는데 사인을 내시면 내가 타임을 부르겠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어떻게든 이치로를 괴롭히고 싶었다. 제스처를 굳이 안 해도 되는데, 한 게 내게는 싫었다. 심판이 미국인이어서 그 정도는 내가 영어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심판과 친해지고 싶어 어깨동무도 했다. 볼이 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투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을 했었다.
-LG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했다.
많은 기대를 받고 2007년 입단을 했다. 첫 시즌 선발로 시작을 했고 힘들거란 예상은 했는데 한국 타자들이 너무나 정교하고 선구안도 좋았다. 2007시즌이 끝나고 호주에서 열린 마무리 캠프에서 미국에서 해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스타일로 바꾸기로 하고 운동을 했다. 김정민 코치님이 당시 공을 받아주셨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봉크라이'라는 별명을 아나.
선수들은 좋은 별명이나 나쁜 별명이나 팬들의 관심이기 때문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봉미미'라는 별명도 아직 듣고 있지만 난 너무나도 좋았다. '봉크라이'는 승운이 없다는 뜻이었는데 윌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웃음). 야구를 하다보면 그런 시기는 오는 것 같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하는 게 30년 야구하며 보니 맞다고 본다. 그런 별명으로 팬 분들께 감사했다. 승수는 못 챙겨서 혼도 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팬 분들이 이해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무엇인가.
'봉의사'라는 별명이 가장 뿌듯하지 않나 싶다. 한 직업을 30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내 자신에게 고맙고, '봉의사'는 대한민국 야구팬들이 지어주신 별명이어서 대대로 이어질 수 있는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팀이 좋지 않을 때 에이스였다. 멘탈 관리법은.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팀 스포츠여서 혼자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선후배들, 동료들과 10시간 이상 야구장에 있는데 이야기를 많이 하며 슬럼프를 벗어났다. 나는 대화가 중요했던 것 같다. 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얻었다. '그동안 네가 올린 승수가 얼마냐','선배님만 믿습니다'와 같은 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던 힘인 것 같다.
-정찬헌을 차기 마무리감으로 꼽았었다. 정찬헌을 비롯해 후배 투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늘까지도 선수들과 전화 통화를 많이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정찬헌의 경우 마무리를 하며 내가 고비가 온다 했었다. 블론세이브를 할 때 전화를 많이 해줬다. 첫 번째는 미안했다. 어느 마무리 투수더라도 블론세이브는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많이 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정찬헌은 심장이 탄탄하다. 그래서 분명 마무리감이라고 생각했다. 힘든 시기가 왔지만 LG에서도 최다 세이브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진해수나 다른 후배들에게도 미안하다.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2년간 하지 못했다. 며칠이라도 함께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고 부정적인 마인드를 벗어날 수 있을지 이야기하며 도와주고 싶다.
-류현진과 친한데 이야기를 나눴나.
현진이가 '더 던져'라고 하더라. 며칠 전에 영상 메시지를 부탁하려 전화했는데 은퇴를 믿지 않더라. '많이 아프냐'고 물어봤다. 류현진도 어깨 수술을 해서 재활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자신은 아픈 것을 참아내면서 던지니까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더라.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던데 내가 "참을 수 없을만큼 아프다"라고 말했다. 은퇴할 때 한 타자라도 던지라는 이야기를 해서 눈물이 났다. 정말 고맙고, 후배를 떠나 메이저리그에 있는 투수가 진심을 다해 말해줘서 고마웠다.
-은퇴가 후배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다가갔으면 하나.
사실 팀이 힘든 시기다. 은퇴를 내가 먼저 얘기했지만 은퇴식에 대해서는 얘기하지않았다. 내년쯤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선배로서 지금 은퇴식을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고맙게도 구단과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이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고비는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많이 온다. 결과적으로 지는 경기도 있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마운드에서 모든 것을 다 저버린 표정들을 많이 봤다. 맞을 수 있고 질 수 있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또 오고 그것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
LG에 레전드 선수들이 많다. 김용수 선배님부터 이병규 선배까지, 자랑스럽고 존경했다. 내가 그 라인에 설 수 있을까 생각했다. 레전드까지는 아니어도 레전드 선수들을 거론하며 내 이름을 말해주는 팬들께 감사하다. LG에서 힘든 시기에 많이 도와줬고 팔꿈치, 어깨 팀을 위해 썼다는 걸 팬들이 알아주셔서 한이 없다.
잠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