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왕웨이중(26)이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왕웨이중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 계정에 한국어로 '처음에는 둘러싸여 맞는 줄 알았어요. 위험했어요'라는 농담과 함께, 동네 초등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대만 국적인 왕웨이중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접고, 올해 처음 KBO리그 무대를 밟았다. 대만 출신 첫 KBO리그 선수로 주목받았는데, 매너 좋은 팬 서비스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스프링캠프에 가보면, 국내 선수들과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꼽히는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실력만큼이나 팬 서비스가 좋다. 특히 어린이팬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커쇼 뿐 아니라 대다수 스타 선수들이 팬과 접촉하는 시간을 중요시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스프링캠프 훈련을 전후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빠짐없이 사인을 해준다. 예외가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중인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오랫동안 서서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한 후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물론, 국내 선수들 중에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가 있다. 팬들에게 친절한 걸로 잘 알려진 A 선수는 "만약 피치 못하게 사인이나 사진을 찍어줄 수 없는 상황이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 100% 이해를 해주신다. 다음에 꼭 해준다는 약속을 지키면 된다. 응원하러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다.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해드리려고 한다"고 했다. B 선수는 "나도 어릴 때 우상이었던 선수에게 사인을 받은 추억이 있다. 그때
|
하지만 팬 서비스 의식이 부족한 선수가 많다. 소속팀과 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선수임에도 '사인 요청을 거절하고 도망가더라', '어린이 팬의 요청까지 냉정하게 뿌리치더라'는 경험담이 야구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한다. 팬들에게 이들은 야구 실력은 최고이지만, 인성은 별로인 선수로 낙인 찍혀있다.
많은 팬들이 경기를 전후해 야구장 출입구 근처에서 선수를 기다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 얼굴을 보고싶은 마음에서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팬도 적지 않다.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선수와 마주칠 때도 있다. 이런 자리에서 반가운 마음에 사인을 요청했는데, 거절을 당하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선수 입장에선 이들이 많은 팬들 중에 한명이겠지만, 팬들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다.
물론, 극히 사적인 자리에 들이닥쳐 막무가내로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무례한 팬도 있다.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한 한 야구인은 "일본팬들은 대부분 선수 사인을 받기 위해 사인지, 공인구를 준비한다. 그런데 국내 팬들 중에는 영수증 뒷면을 내밀거나, 대충 찢은 수첩 종이에 사인해달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또 선수 사인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야구장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큰 가방을 메고 경기장 근처를 오가며 선수 사인을 받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다. 한 특급 스타 선수는 자신의 사인이 거래되는 게 싫다며, 사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KBO리그 선수들의 팬 서비스 의식이 부족한 것은 분명하다. 구단에서 실시하는 교육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프로야구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스포츠다. 타 종목의 경우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선수인데도, 길거리에서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없다고 얘기한다. 프로야구는 그렇지 않다. 쏟아지는 관심을 귀찮아할 게 아니라, 고맙다고 생각해야 한다. 팬들이 등을 돌리면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가 없다. 선수들이 받는 거액 연봉이 결국 팬들의 관심에서 나온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