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1). 그 이름 석자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위업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승엽은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뿐만 아니라 숱한 국제대회에서도 4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한국 야구 위상을 전 세계에 휘날리는 데 앞장섰다. 뿐만 아니다. 야구계 선후배 및 동료들은 그를 한결같은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진정한 인격의 완성체로서 기억한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이승엽의 은퇴를 앞두고 야구계 인사들이 기억하는 이승엽과의 추억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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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이른바 '카지노 파문'이다. 당시 나는 코치였는데, 하여튼 확실한 건 이승엽은 카지노에는 얼씬도 안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수들이 카지노에 갔다고 알려진 바로 그날, 나와 같이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승엽이도 몹시 속상해 했는데, 그러면서도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두들겼다. 대단하지 않나. 시간이 지났지만, 이 일은 꼭 내가 해명해주고 싶었다. 승엽이는 카지노에 가지 않았다.
또 하나는 2006년 WBC 때 일이다. 3월 5일 도쿄돔에서 열린 1라운드 일본전을 앞두고 갑자기 나에게 "감독님 제가 홈런치면 (상금) 얼마 주실래요?"라고 하더라. 그런 농담을 하는 선수가 아닌데, 좀 의외였다. 당시 속으로는 '컨디션이 정말 좋아서 홈런칠 자신이 있나보다'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승엽이 홈런도 쳤고, 나도 2만엔을 상금으로 줬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 승엽이에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니?"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냥 편하게 얘기하고 싶어서요"라고 얼버무리더라. 사실 당시 이승엽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털고 자기 스스로 각오를 다지려고 일부러 농담을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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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뒤 이듬해 (이)승엽이가 왔다. 2002년 우승도 같이했고, 긴 세월 함께했다. 승엽이는 3번, 나는 4~6번을 왔다갔다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서인지 때로는 둘만 있으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2007년을 끝으로 난 현역은퇴를 했다. 2009년 2월에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코치 연수를 갔다. 2군, 3군에 머무르고 있는데 어느날 1군에서 연락이 왔다. 시즌 초에 승엽이가 약간 부진하니 옆에 와서 좀 도와주라고 했다. 훈련을 도와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내가 온 뒤 승엽이 방망이가 잘 맞았다. 그때부터 두 달 동안 승엽이와 함께 1군 경기를 전부 따라다녔다. 원정도 같이 다녔다. 내게는 큰 경험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1군 생활을 피부로 느껴봤다. 그리고 승엽이가 살짝 부진하니 다시 2군으로 내려가라고 하더라.(웃음)
후배지만 참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도 복 받은 친구 아닌가. KBO리그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다. 야구 외적인 생활도 마찬가지다. 오래 오래 기억될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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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승엽이형에게 56호 홈런 신기록을 내줬다. 당시 피할 이유가 없었다. 강속구로 정면 승부했고, 후회는 없다. 정작 홈런을 맞은 뒤 우리 팀이 역전했고 그 날 나도 데뷔 첫 선발승을 따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었다. 그 이후 승엽이형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다시 상대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다시 만난 뒤로는 안타 2개 정도 더 내줬나? 대부분 승부에서 내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KBO를 대표하는 타자지만, '무서운 타자'라기 보다는 '좋은 형'의 이미지가 더 크다. 일본에서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 아주 고마운 추억이 있다.
승엽이형이 일본 진출 2년차였을때였나? 구단 지시로 지바 롯데 캠프에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 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운동하고, 또 훈련 후에는 식사도 하면서 승엽이형이 정말 잘 챙겨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억에 많이 남는다. 그 해 성적이 좋았던 승엽이형이 오히려 나한테 '도움이 많이 됐다'며 운동복을 선물해주셨다. 닳도록 입어서 지금은 아마 입기 힘든 상태일 것이다.(웃음)
승엽이형의 은퇴가 참 아쉽다. 충분히 잘 할 수 있는데 은퇴를 결심한 것이 함께 나이 먹으며 운동한 동료로서 참 아쉽다. 아마 승엽이형의 존재만으로 후배들은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최고의 선수임에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