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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을 달려왔다. 약속한 종착역까지 남은 거리는 8개월여. '국민타자'는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참이다.
삼성 캠프가 마련된 온나손 아카마구장에서 만난 이승엽은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훈련 상황, 마지막 캠프에 대한 느낌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나 특별할 것은 없다고 했다. 아직은 타격감이 오르지 않았지만, 조만간 실전에도 나설 예정이다. 다음은 이승엽과의 일문일답.
-훈련만 소화하고 있는데 현재 컨디션은 어떤가.
-여전히 선배로서 팀을 잘 이끌고 있다고 하는데.
(손사래를 치며)내가 하는 역할은 별로 없다. 모두 열심히 하니까 내가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난다고 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면 안된다. 눈치볼 수 있기 때문에 다 똑같다는 생각으로 아주 평범하게 하고 있다. 인터뷰할 때도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난 개인이고, 여기는 팀이다. 조심하고 있고 걱정도 된다.
-마지막 캠프다. 느낌이 특별할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거는 모르겠다. 16일 정도 남았는데 조금 더 페이스를 올렸으면 좋겠다. 그런 아쉬움만 있다. 다시 못오기 때문에 허탈하다는 느낌은 없다. 생갭다 공이 쭉쭉 뻗어나가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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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없이)애리조나다. 90년대 후반, 2000년 초반 거기서 했다. 이동이 멀었지만, 야구장이 4~5개씩 있으니까 시간도 줄어들고 쉬는 날 쇼핑도 하고 했으니까. 그때 난 어렸으니까 팀에서 그랜드캐년도 보내주고 구경도 많이 했다.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캠프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선배가 있다면.
이만수 선배님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첫 해(1995년) 플로리다에서 훈련을 했는데 내야 잔디에 앉아서 양반다리를 하고 선배님이 말씀중이셨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봤는데 잔디가 길게 나와있길래 만지작거렸다. 그때 갑자기 뒤통수를 확(때리더라). 선배님 말씀중인데 딴짓한다고 혼났다. 아마 선배님은 기억 못하실거다.(웃음)
-올해 목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웃으며)야구를 잘 하는게 목표다. 타격 정리가 안됐기 때문에 수치는 사실 어떻게 될지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캠프 오기전에는 작년과 올해 상황을 생각해 3할, 30홈런, 100타점을 예상했는데, 지금은 확답 못한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는 타격이 아니다. 시범경기 지나면서 신중하게 개인적 목표를 설정하겠다.
-팀은 지난해 무척 부진했다.
작년에 9위를 했으니 올해는 올라가지 않겠나. 야구는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우승 못하라는 법도 없다. 대구 새 야구장에서 포스트시즌을 정말 한 번 해보고 싶다. 정말 욕심이라면 한국시리즈를 새 야구장에서 해보고 은퇴한다면 아주 홀가분하게 (야구와)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의 목표가 포스트시즌이라고 하면 사실 그동안 어울리지 않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위를 보고 도전자 입장에서 달려들어야 한다. 우리같은 팀이 무섭다.
-프로야구를 대표했다. '후계자'를 굳이 꼽자면.
(손사래를 치며)그런거 없다. 우리 선수들 충분히 다 할 수 있다. 난 어렸을 때, 입단했을 때 지금의 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97년 홈런왕할 때도 이렇게 롱런할지 몰랐다. 누가 어느만큼 성장해서 어떤 선수, 대스타로 성공할지는 모른다.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을 해야 하고 팀과 궁합도 잘 맞아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스타가 되고 주축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제2의 이승엽보다는 제1의 구자욱, 제1의 박해민이 나왔으면 한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움 점은.
미국 야구를 경험 못한게 아쉽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워낙 한국에서 성공하고 실패를 모르고 살았다. 일본서 많은 실패를 했다. 좋고 나쁨을 모두 경험했다. 23년간 야구를 빼면 이승엽이라는 이름이 거론될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교양과 지식을 배웠고, 모든게 감사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예전엔 절대 야구는 안한다고 했는데, 그만둘 때가 되니까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만큼 야구를 마무리할 때쯤 되니까 사랑스러워지는 것 같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김인식 감독이 그리워하더라.
감독님은 그동안 너무 잘 해오셨다. 스승님께 드릴 말씀은 없다. 선수들을 믿으시고 하시던대로 하시면 될 것 같다. 워낙 너그러운 분이기에 감사하고 (대표팀)선수들도 그 마음으로 플레이했으면 한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 뭔가 모르는 힘이 나온다. 태극마크는 너무나 큰 영광이다. 전력이 약화됐다고 하지만, 다른 쪽에서 정신력이나 팀워크에서 분명히 커버하시지 않을까 한다. 응원하겠다.
오키나와=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