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한 때 서울의 맹주를 자처했지만,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대를 따라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두산은 '화수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내부에서의 선수 육성에 힘썼다. 잠실구장 특성에 맞는 야구를 펼칠 수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낸 것이 컸다. 장타력은 부족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잘 맞히고 잘 잡고 잘 달리는 선수들이 필요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기회를 얻었던 민병헌, 양의지, 김재호, 오재원, 정수빈 등이 기량이 만개한 시점, 주포 김현수와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 등과의 시너지 효과로 팀 전력이 폭발해 지난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두산은 FA가 되는 김현수 공백을 대비해 키운 박건우로 올해 큰 재미를 봤고, 우승 후 팀에 여유가 생기자 김재환, 오재일이라는 거포 선수들에게도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며 팀 밸런스를 더 탄탄하게 맞췄다.
LG가 올시즌을 앞두고 천명한 리빌딩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LG는 지난해 거포 유망주 정의윤, 나성용 등을 정리했다. 또, 세월이 흐를수록 수비력이 떨어지게 된 베테랑 이병규와 이진영에게도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결국 자존심상 대외적으로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두산같은 야구를 하고 싶었던 결과물이었다. 그 결과 채은성, 김용의, 유강남, 이천웅, 양석환, 문선재, 이형종, 안익훈 등의 야수들이 올시즌을 통해 1군용 선수로 도약했다.
송구홍 단장 선임도 그렇다. 두산이 2연패를 거두자, 선수 출신 김태룡 단장의 활약이 집중 조명됐다. 일반 경영자가 가질 수 없는 야구에 대한 동물적 감각, 현장과의 유대 관계 등이 팀을 강하게 만든 요인으로 분석됐다. 이에 발맞춰 한화 이글스가 LG 감독 출신 박종훈 단장을 영입했고, LG도 6년 동안 장기집권한 백순길 단장을 대신해 송 신임 단장을 선임했다. 송 단장은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코치에 이어 운영팀장, 운영총괄 등 프런트 업무까지 두루 거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입이 눈앞이라는 차우찬도 그렇다. 결국 장원준 역할을 차우찬이 해주기 바라는 LG의 계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시즌 안정적인 이닝 소화에, 큰 경기에서도 강한 장원준의 활약이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FA 영입에 인색했던 두산이 84억원이라는 거액을 쓰며 대성공을 거두자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LG도 그 꿈에 부풀어 있다. 데이비드 허프-헨리 소사-류제국에 이어 차우찬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면 두산의 '판타스틱4' 선발진에 밀리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차우찬은 지난해 잠실에서 2경기 1승-평균자책점 1.23, 올해 3경기 2승-2.82를 기록하는 등 강했다. 또, 차우찬 역시 삼성 라이온즈에서 우승을 밥먹 듯 하며 큰 경기에서 떨지 않는다는 강점까지 있다. 프런트, 현장도 차우찬을 원하지만 구단 최고위층에서 차우찬의 이름을 콕 집어 데려오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LG가 왜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지가 설명된다.
1990년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잠실의 주도권은 LG가 쥐고 있었다. 구단 가치, 스타 플레이어, 팬 지지도 등 두산은 LG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젊은 팬, 여성 팬들에게 야구가 큰 인기를 얻으며 두산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미남 선수들, 깔끔한 구단 이미지, 아기자기한 응원 문화 등이 젊은 여성팬들을 야구장에 오게 만들었다. 현 시점에서 LG가 서울의 맹주라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이제는 LG가 두산을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타성에 젖어 발전하지 못하는 것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변하려 애쓰는 게 올바른 길을 가는 것임은 분명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