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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미국은 증오했고 야구는 사랑했다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6-11-28 18:4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3월 23일(한국시각)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대표팀간의 친선경기를 나란히 앉아 관전하고 있다. 라울은 피델 카스트로의 친동생으로 2008년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이날 친선경기를 관전하지 않고 미국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었다. ⓒAFPBBNews = News1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통치권자로 군림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6일(한국시각)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2년간 쿠바를 지배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지도자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노동자를 위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사회주의 활동을 해오다 멕시코에서 만난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최고 최도자가 됐다. 그는 총리와 국가평의회 의장 등 쿠바 최고 통치자로 2011년 4월 공산당 제1서기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쿠바를 이끌었다. 카스트로가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준 것은 장출혈 수술을 받은 2006년이었다. 기네스북은 그를 역사상 최장 기간 국가 통치자로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주의 독재자로 카스트로를 배척했지만, 쿠바 출신 야구 선수들은 환영했다. 미국과의 국교 단절 후 쿠바 야구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왔다. 현역 메이저리거로는 아롤디스 채프먼, 야시엘 푸이그,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호세 아브레유 등이 쿠바 출신이다. 얼마전 사고로 숨진 호세 페르난데스도 쿠바를 탈출해 메이저리그에 입성, 2013년 신인왕을 차지한 스타였다. 3000안타를 친 라파엘 팔메이로, 홈런왕 호세 칸세코, 월드시리즈 MVP 리반 에르난데스 또한 메이저리그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쿠바 출신들이다. 카스트로 정권의 야구 육성 정책의 혜택을 본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수백만, 수천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스타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카스트로는 1926년 쿠바 아바나 근교에서 사탕수수 농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바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 야구와 농구, 육상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활약했다. 대학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 양키스와 워싱턴 세네터스의 입단 테스트를 지원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 꿈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혁명에 투신해 최고 지도자로 올라선 뒤에도 그는 정책적으로 야구를 육성해 쿠바를 아마야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야구 뿐만 아니다. 카스트로는 국가 주도 스포츠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고 봤다. 카스트로가 사망하던 날 외신들은 '그가 스포츠 강국이 누릴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미국 등 서구 세계와 갈등 관계에 있었지만, 스포츠에서는 경쟁적인 관계로 쿠바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바는 1906년 이후 1968년까지 국제대회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그러다 1972년 뮌헨올림픽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10차례 올림픽 출전에서 총 69개의 금메달을 획득,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드러냈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25차례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자리를 확인했다.

쿠바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붐을 탄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를 통해 서방 세계의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를 동경해 온 그들은 목숨을 걸고 쿠바 탈출을 시도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 역시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쿠바 선수들을 주목했다. 이들이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자리에 오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스트로 정권은 메이저리그와 교류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99년 3월 쿠바로 건너가 친선경기를 치렀고, 2014년 12월 양국간 국교가 재개된 뒤로는 교류가 확대돼 올해 3월에는 아바나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대표팀이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가 원수로는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기 3일 전 피델 카스트로는 공산당 기관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며 미국에 대한 증오를 나타냈다. 카스트로는 2014년 12월 17일 양국간 국교가 정상화된 뒤 한 달간이나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축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쿠바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카스트로에 대해 여전히 저항감을 가지고 있지만, 야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카스트로 정권에서 찾는다. 외신들은 미국을 평생 적으로 대했던 카스트로가 사망함으로써 양국의 야구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스트로는 생전에 한국 야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바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이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기고한 '명예를 위한 금메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쿠바와 상업 야구 천국인 미국을 두 번 이긴 한국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과의 결승전은 매우 긴장되고 특별했다"면서 "상대 선수들은 타격을 위해 설계된 기계 같았고, 왼손 투수는 다양한 구속의 공을 아주 정교하게 던졌다"며 놀라워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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