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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통치권자로 군림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6일(한국시각)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2년간 쿠바를 지배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웠던 지도자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카스트로는 1926년 쿠바 아바나 근교에서 사탕수수 농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바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 야구와 농구, 육상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활약했다. 대학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 양키스와 워싱턴 세네터스의 입단 테스트를 지원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 꿈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혁명에 투신해 최고 지도자로 올라선 뒤에도 그는 정책적으로 야구를 육성해 쿠바를 아마야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야구 뿐만 아니다. 카스트로는 국가 주도 스포츠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고 봤다. 카스트로가 사망하던 날 외신들은 '그가 스포츠 강국이 누릴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미국 등 서구 세계와 갈등 관계에 있었지만, 스포츠에서는 경쟁적인 관계로 쿠바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바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붐을 탄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를 통해 서방 세계의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를 동경해 온 그들은 목숨을 걸고 쿠바 탈출을 시도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 역시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쿠바 선수들을 주목했다. 이들이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자리에 오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스트로 정권은 메이저리그와 교류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99년 3월 쿠바로 건너가 친선경기를 치렀고, 2014년 12월 양국간 국교가 재개된 뒤로는 교류가 확대돼 올해 3월에는 아바나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대표팀이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가 원수로는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기 3일 전 피델 카스트로는 공산당 기관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며 미국에 대한 증오를 나타냈다. 카스트로는 2014년 12월 17일 양국간 국교가 정상화된 뒤 한 달간이나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축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쿠바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카스트로에 대해 여전히 저항감을 가지고 있지만, 야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카스트로 정권에서 찾는다. 외신들은 미국을 평생 적으로 대했던 카스트로가 사망함으로써 양국의 야구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스트로는 생전에 한국 야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바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이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기고한 '명예를 위한 금메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쿠바와 상업 야구 천국인 미국을 두 번 이긴 한국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과의 결승전은 매우 긴장되고 특별했다"면서 "상대 선수들은 타격을 위해 설계된 기계 같았고, 왼손 투수는 다양한 구속의 공을 아주 정교하게 던졌다"며 놀라워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