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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하주석 벌칙훈련, 애정인가 모욕인가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6-08-18 01:09 | 최종수정 2016-08-18 01:21


◇한화 김성근 감독. 야간 특타, 지옥훈련, 지옥펑고 등 맹훈련으로 선수들을 담금질 하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7.16/

지난 17일 청주구장. 한화는 두산에 4대7로 졌다. 4-0으로 앞서다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전날 패배에 이어 2연전을 모두 내줬다. 경기후 서울 원정(LG전)을 위해 선수단은 이동해야 했지만 '나머지 공부'가 있었다. 유격수 하주석(22)은 경기후 관중들이 떠난 청주구장에 홀로 남아 피칭머신이 뿜어내는 플라이볼 수십개를 쉬지않고 잡았다. 벌칙 수비훈련이었다. 이는 김성근 감독의 애정어린 지도인가, 선수의 자존심을 긁는 모욕적인 화풀이성 처사인가.


◇한화 하주석이 17일 청주 두산전이 끝난 뒤 플라이볼 포구 훈련을 홀로 수행하고 있다.
이날 하주석은 결정적인 수비실책을 했다. 4-4 동점이던 7회 평범한 플라이볼을 놓쳐 역전패 빌미를 제공했다. 평범한 뜬 공이었고, 자신이 잡겠다며 콜까지 한 상황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하주석에게 특별훈련 수행을 지시했다. 경기후 한번씩 특타를 하는 팀은 한화가 유일하지만 홀로 수비훈련을 한 경우는 한화에서도 이번이 처음이다. 다수 취재진이 이를 현장에서 지켜봤고, 상당부분 기사화도 됐다. 프로선수로선 이유불문, 수치스런 일이다.

이를 지켜본 일부 취재진과 한화 관계자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수십년 전에도 보기드문 장면이기 때문이다. 선수가 수비실책을 했다고 해서 경기후 홀로 징계성 추가훈련을 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성근 감독이니 가능했다.


◇7월 29일 한화-두산 잠실경기. 4회말 1사 1, 2루 두산 김재호의 2루수 땅볼 때 한화 유격수 하주석이 1루주자 박세혁을 포스아웃시킨 후 1루로 송구하고 있다. 1루 악송구로 실점.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7.29/
하지만 어이없는 실책을 한 선수가 하주석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주석은 한화에선 특별한 존재다. 30대 베테랑이 즐비한 팀에서 그나마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어린 선수다. 2012년 한화의 1라운드 1순위 지명. 당시 계약금은 3억원이나 됐다. 상무에서 전역한 뒤 올시즌 누구보다 기대감을 품게했고, 시즌 초반 맹활약으로 한화의 대형 유격수 탄생 시나리오를 무르익게 했다. 김성근 감독도 트레이드 불가선수로 못박은 바 있다. 지난 6월 사타구니 가래톳과 근육부상으로 40여일 치료와 재활을 한 뒤 7월말 팀에 복귀해서도 견고한 모습이다. 타율 2할9푼5리에 7홈런 42타점을 기록중이다. 한화 다이너마인트 타선의 상하위타선 연결고리. 유격수 경쟁자인 권용관과 강경학을 방망이로 압도한다.

문제는 수비다. 수비는 경험이 중요하지만 아쉬운 수준이다. 특히 플라이볼 처리 미숙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스스로도 부족함을 인정한 부분이다. 지난 12일 울산 롯데전에서도 2-0 리드상황에서 강민호의 평범한 플라이타구를 놓쳐 실점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화는 3대4로 역전패했다.

김성근 감독의 지도 방식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개인의 개성이나 자존심과는 대척점에 있다. 옛날 도제교육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억지로 끌고간다. 연배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선수들이 가깝게 다가서지 못한다. 코치들도 타팀에 비해 입이 무겁다.

지난 4월 14일 두산전에서는 벌투 논란도 있었다. 한화 불펜 에이스 송창식은 4⅓이닝 동안 12실점을 했지만 계속 마운드를 지켰다. 김성근 감독은 "송창식이 스스로 깨우치길 원했다"고 했다. 송창식은 최근 "당시 사건이 피칭 밸런스를 잡는데 도움이 됐다"고 분명히 말했다. 실제로 송창식은 이후 한화의 불펜 버팀목으로 활약중이다. 올시즌 8승(4패)을 구원승으로 따냈다. 팀내 최다승이다. 송창식은 영리하게 자신이 취할 것을 제대로 파악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막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한 하주석의 마음가짐이다. 속으론 짜증이 날수도, 속상할 수도, 열이 받을 수도 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 열대야에 경기를 마친 뒤 땀에 밴 유니폼으로 마음 불편한 수비훈련을 했다. 그속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면 이날 기억은 하주석의 야구인생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 수비는 자신감이고, 뜬공 트라우마는 기술이 아닌 마음이 문제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여전히 '틀린 것이냐, 다른 것이냐'를 두고 설왕설래다. 호불호도 갈린다. 김성근 감독 야구는 예나 지금이나 큰 뼈대는 변하지 않았다. 지옥훈련, 지옥펑고, 야간특타, 경기전 특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은 제로다. 2년전 김성근 감독을 모셔와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일부 한화팬과 김성근 감독과 계약한 한화 구단.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김성근식 야구'가 아닌 '김경문 야구, 염경엽 야구'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권한은 감독에게 이미 주어졌고, 이제는 그에 다른 책임을 묻는 단계만 남았다. 계약 기간을 채우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잘못된 지도방식, 화풀이성 지도방식을 고수하면 결국 감독만 손해다. 부당한 처사에 열받은 선수의 마음이 돌아서면 팀으로선 손해, 감독에게도 마이너스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 감독도 을이 될 때가 있다. 때론 선수 눈치도 봐야한다. 김성근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벌칙훈련이 악수냐, 신의 한수냐는 하주석 마음먹기에 달린 셈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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