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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대표팀은 언제부터인가 '김인식호'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번에도 '김인식호'였다. 김 감독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를 4강에 진출시키며 '국민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방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야구는 국제적으로 그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1라운드와 8강, 4강까지 일본과 세 차례 맞붙어 2승1패를 기록했다. 1라운드 도쿄돔 경기에서는 8회 이승엽의 역전 투런홈런으로 3대2로 이겼고, 8강전에서는 이종범의 2타점 적시타로 2대1로 승리했다. 4강전에서는 일본 에이스 우에하라의 7이닝 무실점 호투에 밀려 0대6으로 패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거들을 포함해 전 세계 야구를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여 경합을 벌인 첫 대회서 한국은 김 감독의 마법같은 지휘 아래 4강 신화를 써내려갔다.
2009년 제2회 WBC에서 김 감독이 이끈 한국 야구는 준우승에 올랐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한국은 1라운드서 일본과 두 번 대결해 1승1패를 기록, 1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한 한국은 베네수엘라를 준결승에서 10대2로 꺾은 뒤 결승에서 다시 일본을 만났다. 그러나 3-3 동점이던 9회 2실점하며 3대5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기이한' 대회 방식 탓에 일본과 5번이나 만나 2승3패로 밀렸지만, 준우승의 쾌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김 감독이 일궈낸 성과였다.
김 감독은 제2회 WBC를 앞두고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유명한 말로 선수들의 정신력 무장을 당부했다. 올시즌 도중 개최가 확정된 프리미어12 대회의 대표팀 사령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프로팀 감독들이 고사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김 감독은 기꺼이 대표팀의 중책을 또다시 받아들였다.
그는 이번에도 '국민감독'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짜릿한 '감동'으로 펼쳐 보였다. 김 감독은 언젠가는 태극마크가 달린 영예로운 지휘봉을 후배에게 건네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놓아주기 힘든 심정이 지금 이 순간 뿐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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