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물러날 '김인식', 왜 떠나보내기 힘든가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5-11-20 02:46 | 최종수정 2015-11-20 05:01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릴 프리미어 12 준결승 일본과의 경기에 앞서 김인식 감독이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도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11.19.

한국 야구대표팀은 언제부터인가 '김인식호'라고 불려지고 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는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프리미어12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역대 한-일전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동을 안겨다 준 명승부였다.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을 또다시 정복했다. 패색이 짙던 9회초 타선이 믿기 힘든 집중력을 발휘하며 4점을 뽑아 결국 4대3으로 승리했다.

0-3으로 뒤진 9회초, 좀처럼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김 감독은 선두타자로 대타 오재원을 투입했다. 오재원은 노리모토의 포크볼을 받아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때렸다. 이어 김 감독은 9번 타순에 또다시 대타 손아섭을 내세웠다. 손아섭 역시 노리모토를 상대로 중전안타를 터뜨리며 찬스를 무사 1,2루로 만들었다. 김 감독이 꺼내든 대타 작전이 두 타자 연속 성공했다. 한국의 드라마같은 역전승은 오재원과 손아섭의 연속안타로 시작됐다.

이번에도 '김인식호'였다. 김 감독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를 4강에 진출시키며 '국민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방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야구는 국제적으로 그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1라운드와 8강, 4강까지 일본과 세 차례 맞붙어 2승1패를 기록했다. 1라운드 도쿄돔 경기에서는 8회 이승엽의 역전 투런홈런으로 3대2로 이겼고, 8강전에서는 이종범의 2타점 적시타로 2대1로 승리했다. 4강전에서는 일본 에이스 우에하라의 7이닝 무실점 호투에 밀려 0대6으로 패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거들을 포함해 전 세계 야구를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여 경합을 벌인 첫 대회서 한국은 김 감독의 마법같은 지휘 아래 4강 신화를 써내려갔다.

2009년 제2회 WBC에서 김 감독이 이끈 한국 야구는 준우승에 올랐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한국은 1라운드서 일본과 두 번 대결해 1승1패를 기록, 1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한 한국은 베네수엘라를 준결승에서 10대2로 꺾은 뒤 결승에서 다시 일본을 만났다. 그러나 3-3 동점이던 9회 2실점하며 3대5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기이한' 대회 방식 탓에 일본과 5번이나 만나 2승3패로 밀렸지만, 준우승의 쾌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김 감독이 일궈낸 성과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서 대표팀 지휘봉을 처음 잡은 김 감독은 두 차례 WBC와 이번 프리미어12 조별 리그까지 일본과의 10차례 맞대결에서 5승5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날 준결승서 통쾌한 역전승을 지휘하며 일본에 6승5패로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일본 야구는 한국보다 늘 한 수 위였다. 최고의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숱한 명승부를 연출했던 김 감독이 이번에는 역대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역전승의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김 감독은 제2회 WBC를 앞두고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유명한 말로 선수들의 정신력 무장을 당부했다. 올시즌 도중 개최가 확정된 프리미어12 대회의 대표팀 사령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프로팀 감독들이 고사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김 감독은 기꺼이 대표팀의 중책을 또다시 받아들였다.

그는 이번에도 '국민감독'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짜릿한 '감동'으로 펼쳐 보였다. 김 감독은 언젠가는 태극마크가 달린 영예로운 지휘봉을 후배에게 건네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놓아주기 힘든 심정이 지금 이 순간 뿐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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