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경고 흘려들은 한화야구, 더 참담하다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5-09-22 10:27


◇한화가 좋을 때 최고의 찬스를 받았던 이도 김성근 감독, 추락할 때 비난의 중심에 선 이도 김성근 감독이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안타까운 참사 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사후약방문'.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고, 대중교통 대형 참사 등. 일이 터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어도 믿기힘든 현실을 바꾸진 못한다.

한화의 추락은 더 참담하다. 숱한 경고음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나쁜 상황이 전개될 것을 끊임없이 예고했는데 이를 흘려듣다 난처한 처지가 됐다. 의지로 포장된 아집은 시즌 전체를 일그러뜨렸다. 박수를 보내던 손으로 손가락질을 하려니 팬이나 언론이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올시즌 한화야구는 전반기엔 약 주고, 후반기엔 병 줬다. 투지와 악바리 근성으로 시즌 중반까지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불꽃 투혼'은 사그라들고 있다. 5위와는 2게임 차. 남은 8경기에서 전승을 한다해도 다른팀 성적을 지켜봐야 한다. 5위 롯데와 승차없는 6위 SK, 반게임 뒤진 7위 KIA까지 있기 때문에 한화의 5위 탈환 가능성은 기적 수준이다. 경쟁하는 세 팀이 나란히 미끄러져야 하는데 맞대결 등 변수를 제외하면 한화 몫은 없다.

한화의 몰락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만년 꼴찌의 발버둥에 가슴뭉클해 하며 타팀 팬들도 박수를 보냈는데 혹사논란, 무더위 특타논란이 이어지며 시선이 싸늘해졌다. '강자는 욕먹는다'는 김성근 감독의 지론이 '안티 김성근'을 야기시킨 것이다.

지난해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한화 선수들을 크게 나무랐다. 정신상태와 몸상태 모두 엉망이라고 질타했다. 마무리 훈련부터 지옥을 경험시켰다. 스프링캠프는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됐다. 지옥의 외인구단이 돼 돌아온 독수리들을 보며 야구계는 두 가지 전망을 내놨다. '올해 성적을 내겠지만 내년, 내후년 부상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올해 어떻게든 과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다.' 그래도 한화에 모종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시즌이 시작되면서 한화가 돌풍을 일으키자 반응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즌이 깊어지면서 매일 이어지는 특타, 권혁과 박정진의 혹사논란이 나오자 여기 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A감독은 "이런 식이면 선수들이 버티지 못한다. 여름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타구단 B선수는 지난달 "한화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조금씩 나오더라. 너무 힘들다는 말만 했다. 고참급 선수가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기도 했다더라. 팀분위기가 엉망"이라고 증언했다. 아예 권혁을 쉬게 해줘야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때마다 김성근 감독은 "팀 사정은 팀 내부만 알 수 있다. 밖에서는 모른다"고 일축했다. 엄밀히 말하면 최고 결정권자인 김성근 감독의 눈치를 보며 코치들은 정상적인 야구로의 회귀를 간언하지 못했다. 1인 지도체제, 강력한 카리스마는 긍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리한화'라는 별명과 마찬가지. 마약의 달콤한 유혹은 치명적인 중독성과 환각을 동반한다.

정석은 묘수가 아니다. 정석을 지키면 최소한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정석을 벗어나면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에 가까워진다. 승부수는 한 두번에 그쳐야지 매번 일상처럼 반복될 순 없다. 김용희 SK 감독은 지난 21일 KIA전을 앞두고 "욕은 엄청들었지만 불펜을 아낀 덕에 지금 승부처에 그들을 더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김용희 감독이 지금을 염두에 두고 선수들의 힘을 저축해 놓았다는 의미인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 의미인지는 모르나 힘을 당겨쓰진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한화는 한달 넘게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총력전을 외치기 이전부터 사실상 다른 팀들이 보기엔 총력전, 한국시리즈 같았으니 한화선수들은 시즌 내내 포스트시즌 같은 피로도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올해 한화를 보면 급히 먹다 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차적응은 시차가 클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지난 3년간 꼴찌에서 단숨에 가을야구, 우승을 노리고 욕심을 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순 없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됐을 때라도 무리수를 걷어내야 했다.

행여나 김성근 감독의 마음에 '지난 마무리캠프, 스프링캠프에서의 특타가 부족해 팀타선이 폭발하지 않고, 주위에서 보는 것보다는 권혁의 등판일정을 조정해줬다'는 생각이 있다면 내년에도 한화는 힘들 수 있다. 덕아웃에 앉아있는 선수들이 울고 있지 않다고 해서 행복할 거라 단정지어선 안된다. 이미 한화 선수들은 다팀 동료들을 만나 이런 저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앞에선 말하지 못하는 법이다. 뒷담화는 나랏님도 어쩌진 못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팀은 망가진다. 지도자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김 감독 스스로 'SK때는 됐는데 한화에선 왜 안될까'라며 옛 방식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도 없다. 그때와 지금은 팀도 다르고, 선수도 다르고, 야구스타일도 다르고, 상대 팀도, 상대하는 타팀 감독들도 달라졌다. 야구에서 미세한 차이가 큰 결과 차로 이어진다는 것은 스몰볼의 대가인 김 감독이 더 잘알 터. 이런 저런 파열음과 추락은 엄밀히 말해 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고, 이를 꿰뚫어볼 혜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우리팀 사정을 모르니 입 다물라'라는 말은 속좁은 생각이다. 숲 속에선 숲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주위의 충고가 그래서 중요하다. 충고를 가슴에 새기려면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신부터 걷어내야 한다. 김 감독은 외롭게 야구인생 외길을 걸어왔다지만 박수를 보낸 이도 많았다. 소통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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