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에 들어서기 직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헬멧을 벗고 홈, 원정 관중석을 향해 허리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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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약물 복용' 파문으로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던 한화 최진행이 지난 6월23일 대전 넥센전 이후 50일 만의 1군 선발 복귀전에서 '속죄포'를 연거푸 날렸다. 첫 타석에서는 2점 홈런, 두 번째 타석에서는 2타점짜리 적시 2루타였다. 최진행이 가세한 한화 타선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한화는 12일 수원 kt전에서 초반부터 타선이 대폭발한 끝에 kt를 13대3으로 크게 눌렀다. 이로 인해 올시즌 처음으로 '4연승'의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12일 경기에서는 6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시켰다. 현재 한화 타선의 구성과 최진행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다. 대신 김 감독은 최진행의 실전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날 경기 전 특타조에 집어넣었다. 최진행은 김회성 주현상 권용관 박노민 장운호 등 동료들과 함께 오후 3시30분부터 수원 경희대 야구장에서 약 1시간 40분 가량 김 감독이 직접 지휘하는 특별 타격 훈련을 수행했다. 이어 케이티위즈파크에 도착한 뒤에도 또 타격연습과 간단한 수비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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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타의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최진행은 2-0으로 앞선 1회초 2사 1루 때 첫 타석에 들어섰다. 타석에 들어서기에 앞서 헬멧을 벗고 야구장 1, 3루측 관중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최진행은 전날 1군 복귀 인터뷰 때 "야구팬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앞으로 늘 잘못을 반성하면서 하루하루 겸손하게 땀흘려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야구팬 앞에 허리를 숙여 다시 한 번 사과한 것이다. 야구장을 찾은 한화 팬들은 최진행의 이런 모습에 박수와 응원으로 화답했다. kt 팬들도 야유와 비난대신 담담한 박수로 잘못을 만회하려는 한 남자의 노력을 받아들였다.
이런 팬들의 모습에 힘을 얻은 듯 최진행은 복귀전 첫 타석에서 곧바로 홈런을 쳤다. 볼카운트 1B1S에서 kt 선발 주 권의 3구째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을 남겨버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알 수 있었다. kt 외야진이 타구 추격을 포기할 정도였다. 결국 최진행이 날린 타구는 좌중간 관중석 중단에 떨어지는 비거리 125m짜리 대형홈런이었다. '주장' 김태균을 비롯한 팀 동료들은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최진행을 감싸안으며 말없는 격려를 보냈다. '금지약물 복용파문'이 벌어지기 전인 지난 6월14일 대전 SK전 이후 59일 만에 날린 홈런이었다.
극심한 부담감, 그러나 안고가야한다
최진행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진행은 스코어가 7-0으로 벌어진 2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도 장타력을 선보였다. 1사 1, 3루에서 나온 두 번째 타석에서 우전 적시 2루타를 날려 주자를 모두 홈에 불러들였다.
두 번의 타석에서 홈런과 2루타로 총 4타점. 50일간 1군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맹활약이다. 이 결과는 순전히 최진행의 힘만으로 일궈낸 것이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그간 망쳐온 것이다.
하지만 최진행의 야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잘못을 실력으로 만회하기 위해 최진행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팬들의 비난 역시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최진행은 모두 다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그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날 역시 부담을 딛고나선 첫 복귀전 때문인지 최진행은 갑작스러운 두통과 탈진 증세로 3회초 공격 때 대타 조인성으로 교체돼 경기에 빠졌다. 그리고는 인근 동서울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고 링거 주사를 맞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스트레스 또한 최진행이 아주 오랫동안 안고 가야할 숙제다. 이제 최진행은 스트레스와 친해져야 한다.
수원=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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