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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 괴로워도 투수 실험하는 이유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4-05 11:07


지고 속 편한 사람은 없다. 특히나 성적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패배는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이다. 승부사들은 그래서 패배앞에 밤잠을 설친다.


1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2015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경기가 열렸다. 6회초 1사 1루서 두산 양의지에게 2루타를 허용한 한화 유창식이 아쉬워하고 있다.
대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4.01.
요즘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73)는 쉽게 잠을 못 이룬다. 예전에도 경기 구상을 하다 새벽을 밝히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올해는 그런일이 더 잦다. 시즌 초반, 팀을 운용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4일까지 겨우 정규시즌 5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피로감은 마치 20경기쯤 치른 듯 하다.

한화의 시즌 초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시즌 좋은 성적을 낸 강팀과의 경기가 연달아 잡혀있다. 게다가 상당수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다. 그래도 첫 5경기에서 연패에 빠지지 않고, 2승3패로 승률 5할 언저리에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이렇게 1승1패씩 반복하면서 4월에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런데 첫 5경기를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벌떼 마운드'나 '포지션 경계 파괴' 등 이전까지 김 감독 스타일의 야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자신의 경기 운영 스타일을 유지하면는 동시에 '실험'을 하고 있다. 힘도 들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김 감독의 '실험'은 근본적으로 한화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마침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 가능한 한 여러가지 카드를 타이트한 실전에 투입해 과연 어떤 힘을 낼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아직은 팀간 격차가 크지 않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시즌 초반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19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장민재가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3.19/
대표적인 것이 투수진 운용이다. 좌완 선발 요원 유창식은 지난 1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1-3으로 뒤진 6회초에 깜짝 불펜으로 나왔다. 원래 선발 로테이션에 있던 투수. 김 감독은 "그간 별로 많이 안던져서 (실전때) 1이닝 정도 던져보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투수의 실전 감각 강화와 함께 타이트한 상황에서 필승 요원으로서의 활용가능성도 알아본 기용법이다.

만약 여기서 유창식이 잘 던졌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유창식은 황당한 '15구 연속 볼'을 기록하며 흔들렸다. 아직은 보완점이 많다는 걸 드러낸 셈이다. 승리를 놓쳤지만, 유창식의 제구력과 배짱이 여전히 덜 다듬어졌다는 것, 그리고 불펜 요원으로서의 활용도 역시 크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한 건 소득이다. 이런 오류는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또 3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보인 불펜 기용도 어떤 의미에서는 김 감독의 실험이라고 해석가능하다. 선발 송은범을 2이닝 만에 내린 건 구위와 제구력이 형편없어서다. 이건 김 감독 특유의 승부수다. 원래 김 감독은 시즌 초반 송은범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스프링캠프에서 종아리 통증 등으로 투구수가 많지 않아 긴 이닝을 버티기 힘들다. 흔들리면 바로 바꾼다는 원칙이 서 있었다.


2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2015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경기가 열렸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4.02.

2회까지 송은범은 정말 '운이 좋아' 2점만 허용했다. 김 감독은 0-2로 뒤진 3회부터 곧바로 불펜을 가동했다. 박정진(1이닝 무실점)에 이어 안영명까지는 승부수였다. 그러나 안영명이 5회에 2점을 내준 이후부터는 기용 패턴이 좀 달라진다. 허유강부터 정대훈까지 4명의 투수를 모두 투구수 20개 이내에서 짧은 호흡으로 바꿨다. 권 혁(5개)과 정대훈(4개)는 마치 원포인트 릴리프처럼 썼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상황에서 불펜을 길게 운용하지 않고, 타이밍을 빨리 끊어가면서 여러 투수로 상대를 지치게 하는 법. 김 감독의 전매특허다.

그런데 8회 1사후부터 연이어 등판한 정대훈과 장민재는 분명 가능성이 있긴 해도 아직은 보완점이 많은 투수들이다. 시즌 끝까지 1군에 남아있을 지 여부가 불투명한 전력들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분명 성장시켜둬야 하는 투수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들에게도 힘든 상황에서 1군 경기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5실점을 해 내용이 나빴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맞는 게 또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분명 이런 기용법은 시즌 중반, 아니 5월만 되더라도 시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 10경기도 채 안 치른 시점이라면 해볼 만 하다. 어차피 전력이 완전치 않다면 홈 더 긴 관점에서 실험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김 감독도 괴롭긴 마찬가지. 씁쓸한 표정으로 덕아웃에서 수첩에 빼곡히 메모를 하면서 김 감독은 마음 속에 칼을 갈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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