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의 역사를 가진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투수 FA'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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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액수가 높아지는 FA 시장에서 투수들은 왜 이렇게 외면받았을까.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배경에 자리한다. 지난 2000시즌부터 시작된 FA 제도에서 소속팀에 잔류한 투수 FA들은 그럭저럭 성과를 냈지만, 이적한 경우에는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전 소속팀에서는 해당 투수의 몸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동안 관리를 통해 해당 선수의 부상 위험도, 향후 지속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냉철하게 판단해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선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다른 팀은 과거와 현재만을 보고 영입을 시도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적한 사례가 많은 건 아니었다. 투수들이 FA를 선언할 정도가 되면, 이미 몸상태가 바닥을 친 경우가 많았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되기 전, 즉 투수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엔 10년 가량 뛴 투수들은 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2003시즌 후 4년간 30억원(옵션 4억원 포함)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KIA 타이거즈에서 LG로 이적한 진필중은 당대를 주름 잡았던 최고의 마무리투수였다. 하지만 LG 이적 후 급격한 내리막을 탔고, 조용히 은퇴했다. 진필중 다음으로 이적한 케이스였던 박명환도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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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장원삼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소속팀 삼성에 잔류하면서 4년간 60억원이라는 역대 투수 FA 최고액(종전 박명환)을 받았다. 모처럼 나온 '투수 FA 대박'이었다.
강속구 투수가 아닌 장원삼은 FA 이후에도 롱런할 가능성이 높은 투수다. 투구폼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구속보다는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들은 10년 가까이 뛰어도 아직은 효용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올해 투수 FA 시장에서도 '제2의 장원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선발요원인 윤성환과 장원준 모두 부드러운 투구폼이 강점인 투수들. 특히 윤성환 같은 경우엔 빠르지 않은 공에도 볼끝과 완벽한 컨트롤로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원준은 좌완의 이점이 있다.
원 소속팀에서 이들을 붙잡는데 실패한다면, 이들의 주가는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실패만 가득했던 투수 FA 이적 시장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예전과는 다른 실패 가능성이 적은 확실한 FA 투수들, 이들이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 FA 시장 개장과 함께 이들의 행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