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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용의 베이스볼 터치] '순수 청년' 오지환, 박경수와의 약속 지키다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4-10-29 10:21


LG와 NC의 201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가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7회말 무사 만루 LG 오지환이 2타점 2루타를 치고 환호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10.25/

"경수 형, 우리 응원 많이 해주시면 더 잘할 수 있을거예요."

LG 트윈스 오지환은 매력이 많은 선수입니다. 수려한 외모에, 수비의 꽃이라는 유격수 포지션에서 화려한 플레이롤 선보이며 LG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LG 구단에서도 이병규(9번) 박용택의 대를 잇는 차세대 간판스타감으로 일찌감치 점찍어놓은 선수가 바로 오지환입니다. 2009년 1차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고, 이듬해부터 주전 유격수로 출전해 지금에 이르렀으니, 구단과 팬들이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인기팀의 주전 선수로 발돋움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계속해서 팀 막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죠. 천방지축 사고뭉치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종종(?) 있지만, 항상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밝은 오지환을 많은 선배들이 예뻐합니다.

그런 오지환의 가장 큰 매력은 순수함, 솔직함이지요. 표현에 꾸밈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입니다. 예를 들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실책이 나왔는데 이에 대한 질타를 들으면 저에게 와서도 하소연을 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도 자신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면 또 확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죠. 확실히 자신의 감정 절제를 할 줄 아는 베테랑 선수들과는 다릅니다. 한국 나이로 25세. 프로 선수이기 이전에 아직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를 수 있는 어린 청년입니다.

그런 오지환의 순수한 모습을 또 봤습니다. 오지환은 2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멋진 수비로 팀의 9대2 승리를 이끈 후, 공식 인터뷰장에 등장했습니다. 데일리 MVP는 선발 신정락이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MVP와 수훈선수 1명이 같이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처음 해보는 포스트시즌 수훈선수 인터뷰. 오지환은 긴장된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계속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원하는 질문이 안나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느낌이 드는 좌불안석의 모습. 오지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죠. "MVP를 타고 인터뷰에 들어와 선배 박경수에게 꼭 할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MVP는 아니다. 그래도 인터뷰실에는 들어왔다. 오늘 박경수에게 메시지를 전하겠는가, 다음에 하겠는가." 오지환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MVP는 아니어도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기에 오늘 하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오지환은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가 열리는 동안 "데일리 MVP도 좋으니 MVP를 꼭 수상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키스톤 콤비로 LG의 후반기 대도약을 이끈 선배 박경수에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죠. 박경수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생애 첫 가을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오지환은 누구보다 선배 박경수의 마음을 잘 압니다. 같은 유격수, 드래프트 1차지명 출신. 하지만 기대만큼의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주지 못한 것까지 닮은 꼴이 참 많은 두 사람입니다.

오지환은 떨리는 목소리로 선배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오지환은 "경수 형이 부상으로 함께하지 못해 너무 슬픕니다. 누구보다 가을야구에 오고 싶어한 사람이 형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준플레이오프부터 오늘 경기까지 다 봤을텐데, 우리 선수들은 형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하고 있으니, 하루 빨리 쾌차하기를 바랍니다. 형이 TV로나마 우리를 응원해준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싶지만, 울컥할까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는 순수 청년 오지환은 떨리는 자리에서 그래도 울지 않고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마음을 박경수 뿐 아니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렇게 프로야구 선수로, 한 남자로 성숙하고,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요.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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