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은퇴는 결정돼 있었다. 모두들 언젠가 유니폼을 벗는 법. 담담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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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내내 이현곤은 NC 덕아웃에 있었다. 1군 엔트리에 없었지만 항상 선수단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김경문 감독은 이현곤을 '준코치'라 불렀다. 사실상 플레잉코치 역할을 한 것이다. 김 감독은 이현곤이 1000경기를 채우고 은퇴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도록 배려했다.
1000번째 경기. 상대는 올 시즌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삼성이었다. 팀으로선 중요한 일전이었는데 혹시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교체 없이 끝까지 뛰며 3타수 무안타. 연장 10회말 무사 1루서 희생번트를 댄 게 그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렇게 은퇴경기를 마친 이현곤을 만났다. 그는 경기 당일을 회상하며 "담담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 가슴 한 구석에서 뭔가 느껴졌다. (이)종욱이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쳐 정신 없이 환호하고, 라커룸에 들어가서 앉았더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난 다른 선배님들과 달리 끝날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1000번째 경기가 마지막인 걸 알고 들어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람 감정이란 게 이렇구나 싶더라. 주체할 수가 없었다"며 "마지막 경기에서 풀로 뛰게 해주신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팀으로 보면 정말 민폐인데, 나 하나 때문에 큰 결단을 내려주셨다"고 덧붙였다.
김경문 감독과는 NC에 온 뒤 만나 2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을 함께 했지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현곤은 "1년 내내 항상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주셨다. 코칭스태프도 동생처럼 잘 해주시고, 구단 직원들도 가족처럼 해주셨다. NC에서 보낸 2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이 서툴러서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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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1군 선수단과 항상 함께 했지만, 그라운드에 나설 기회는 고작 7번 밖에 없었다. 사실 마지막 시즌을 보내는 그와 인터뷰를 하려 했지만, 시즌 내내 사양해왔다. 그는 "사실 그동안 코치도 선수도 아닌 생소한 신분이어서 말을 아꼈다.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는 것만 생각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에서 선배로서 얘기해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팀에 부족한 부분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포스트 시즌에 가도록 돕고 싶었는데 동생들이 잘 해줘서 자랑스럽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매일 하던 훈련을 처음 거르자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현곤은 "오늘 처음으로 타격훈련을 안 했는데 좀 어색했다. 이제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생갭다 이른 나이에 맞은 은퇴다. 주변에는 아직 충분히 뛸 수 있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현곤은 "어제 경기에 뛰어보니 몸과 마음이 안 되겠다고 말하더라. 프로에서 13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야구를 한 시간이 27년 정도 되는데 원없이 뛴 것 같다. 생갭다 오래 야구를 했다"며 "선수로서 우승도 경험해봤고, 타격 1위, 최다안타 1위도 해봤다. 또 국가대표도 한 번 뽑혔다. 많은 걸 해서 후회는 없다"고 털어놨다.
이현곤은 2007년 타격왕(타율 3할3푼8리) 출신이다. 그해 최다안타 1위(153개)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다. 사실 그는 선수생활 내내 만성간염과 갑상선저하증에 시달렸다. 항상 약을 달고 살았기에 운동을 하면 다른 쪽으로 부작용이 나왔다. 급기야 족저근막염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현곤은 "사실 그 병이 내 선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는 않는다. 7~8년간 안고 온 병이다. 다른 선수들도 직업병 하나씩은 있지 않나. 그건 핑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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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일까. 그는 네 경기를 꼽았다. 가장 먼저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2002년 5월 2일 수원 현대전에 대타로 나선 첫 경기. 2루타를 날려 눈도장을 찍은 그는 다음 경기에 곧바로 선발 라인업에 들어갔다. 2006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1 동점이던 6회말 2사 만루에서 한화 류현진을 상대로 친 만루홈런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현곤은 NC에 입단한 뒤 창단 첫 승을 올린 경기와 자신의 마지막 경기까지 언급했다.
이중에서도 NC에 와서 거둔 첫 승은 인상깊었다. 이현곤은 "처음 NC에 오니 선수들이 모두 '백지' 같았다. 처음엔 (이)호준이형과 '이런 선수들과 경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며 "첫 승은 정말 힘들었다. 개막전부터 7연패를 하고 술도 못 하는데 호준이형과 술 한잔이라도 마셔야 하냐고 얘기했다"며 웃었다.
이제 또다른 한 경기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덕아웃에서 함께 할 생각이다. 오는 20일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 동행해 지도자로서 첫 출발을 하는 이현곤은 시즌 최종전에 앞서 귀국해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1000경기 출전 기념상을 받는다. 포스트 시즌도 함께 할 여건이 됐다.
담담하게 인터뷰를 하던 이현곤은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가가 촉촉해졌다. 평생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아버지 생각이 나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이현곤은 "마지막 경기 때 부모님과 아내, 아이들이 모두 경기장에 왔다. 아버님께서 근무지를 옮기셨는데 내가 계속 야구를 하고 싶다 하셔서 '기러기 아빠' 같은 생활을 하셔야 했다. 남자끼리 표현을 잘 못해 그동안 한 번도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어제도 수고했다고만 하시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 드리고 싶다. 덕분에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직업 삼아서 할 수 있었다. 정말 즐거워서, 좋아서 야구를 했다. 후회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