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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강정호 지우기' 작업이 뜻하지 않게 일찍 시작됐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넥센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인 강정호는 11일 인천 SK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8회 홈에 슬라이딩을 하다 손가락을 다친 이후 이날까지 벌써 12일째 '개점휴업' 상태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넥센 염경엽 감독은 "강정호가 오늘 손가락을 부드럽게 하는 주사를 맞았다. 따라서 12일 경기까지는 나오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최소 9경기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염 감독은 "모든 검사를 했는데 이상은 없다. 조금 무리를 한다면 기용을 할 정도다. 즉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팀도 팀이지만, 아시안게임에서 해야 할 역할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정호는 다음주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핵심 멤버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 하며 금메달을 땄던 강정호는 이 덕분에 병역 혜택도 받았다. 이번에는 다른 선후배들에게 베풀 차례다. 따라서 기왕이면 완벽한 몸 상태로 대회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른바 '강정호 지우기'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강정호는 현재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로부터 상당히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두 리그의 스카우트가 하루가 멀다하고 강정호의 플레이를 현장에서 체크하고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구단의 동의 하에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포스팅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넥센은 사실상 강정호의 해외 구단 이적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본인의 의지가 강한데 굳이 붙잡아 둔다면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고 어차피 2년 후면 이적료 한푼 받지 못하고 FA로 풀어줘야 한다. 게다가 류현진의 사례처럼 국내 구단들이 좀 더 큰 시장에서 뛰고 싶은 선수를 기꺼이 풀어주고 있는 것이 요즘 트렌드가 됐다. 포스팅 금액도 상당하기 때문에, 넥센처럼 스폰서 영입을 통해 구단을 운영하는 팀으로선 크게 손해보는 장사도 아니다. 이해 관계만 맞는다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다.
어쨌든 이는 염 감독도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트 강정호'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염 감독은 김지수 김민성 김하성 등 백업 자원뿐 아니라 윤석민까지 차기 유격수 후보군으로 올려놓은 상태다. 염 감독은 평소에도 "수비 안정성은 김하성이 뛰어나지만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 만약 윤석민이 유격수 자리를 꿰찬다면 강정호만큼은 아니더라도 타선의 부족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며 "네 선수를 마무리 훈련부터 계속 시험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목표인 정규시즌 2위 자리는 사실상 굳혔으니 굳이 부상이 있는 강정호를 쓰지 않고 일찌감치 차기 유격수 찾기가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강정호가 나서지 않았던 7경기에서 6승1패를 거뒀으니 더욱 그랬다.
어쨌든 넥센의 내년 시즌 구상은 벌써부터 시작됐다. 4위 자리 하나를 놓고 마지막까지 혈전을 펼치고 있는 LG부터 최하위 한화까지 6개팀으로선 '먼나라 얘기'이자 부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인천=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