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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정말 어렵습니다."
류제국은 19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 시즌 6번째 승리를 거뒀다. 5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5실점(4자책점) 했지만 지난달 16일 삼성 라이온즈전 승리 이후 약 1달 만에 거둔 승리라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특히, 팀이 치열한 4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상대 에이스 밴헤켄과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 기쁜 마음이었다. 류제국은 "실점 여부를 떠나 중요한 승리를 따냈으니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류제국은 최근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팔 스윙시, 앞으로 쭉 끌고나오지 못하고 몸통 뒤에서 끊어 던지는 모습이었다. 류제국은 몸통 회전을 이용해 공을 던지는 대표적인 투수. 이 회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구위도 떨어지고 제구 능력도 잃게 됐다.
류제국은 "몸상태와 컨디션, 내가 느끼는 밸런스 등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고 자신한다"며 "문제가 있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타자를 상대로 너무 안맞으려 하고 있더라. 이 것은 내 야구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작년에는 한국에 처음 왔고, 모든게 낯설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칠테면 쳐봐라'라는 마음으로 무조건 정면승부를 했다"고 말하며 "올해는 그렇게 자신있게 던진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코치님들, 그리고 주변에서 '너 왜 안맞으려 도망다니느냐'라고 지적을 해주시더라. 나도 모르게 '맞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에 코너워크를 하고 유인구를 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볼이 많아지고 볼넷이 늘어났다. 원하는 곳에 꼭 던져야 한다는 부담에 몸의 밸런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볼-볼넷-위기-결정타-상대의 빅이닝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돌이켰다.
류제국이 넥센전 승리에 기뻐한 것은 단순히 시즌 6번째 승리를 거둬서가 아니다. 5이닝, 5실점 했지만 무4사구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류제국이 올시즌 무4사구 경기를 한 것은 지난 7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전 딱 한차례 뿐이었다. 류제국은 "마음을 고쳐먹으려 애쓴 경기였다. 넥센 타선이 강하지만 자신있게 승부했다. 좋았던 기억을 잃은 몸이 시즌 동안 100% 회복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넥센전을 통해 내 멘탈은 단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초구에 안타를 맞는 투수가 가장 훌륭한 투수라고 한다. 앞으로도 자신있게 타자들과 승부하겠다"라고 밝혔다.
"에이스라는 칭호의 중압감, 생갭다 크더라."
매사에 자신감 넘치던 류제국이 왜 마운드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는지 더욱 깊숙한 얘기를 나눠봤다. 그런데 류제국에게서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가 튀어나왔다.
류제국은 개막 전, 그리고 시즌 초를 돌이키며 "에이스라는 부담감이 생각 이상으로 나를 지배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류제국은 시즌 도중 1군 무대에 투입돼 12승2패를 기록하며 승률(0.857)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단순히 개인 타이틀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LG는 지난해 기적과 같이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며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했는데, 이는 좋지 않던 시즌 초반 반전 분위기를 이끈 류제국의 공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때문에 올시즌을 앞두고는 "류제국이 LG의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라는 말이 장맛비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기자가 류제국을 지난해 지켜본 결과, 이같은 평가는 류제국을 더욱 춤추게 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목받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리더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유형의 선수다. 지난해 한국 첫 등판 때 "이왕이면 만원 관중이 들어찰 KIA 타이거즈전에 내보내달라"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때 고교시절 숙명의 라이벌 김진우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승리를 따냈다.
류제국 본인도 시즌 초를 돌이키며 "에이스라는 칭호에 뿌듯하고 좋았다.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던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꼬이고 말았다. SK 와이번스전 시즌 첫 등판. 4⅓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볼넷이 4개, 사구가 3개. 제구가 분명 흔들렸다. 하지만 문제는 자책점이 1점이었다는 것이다.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첫 8경기 동안 단 1승도 따내지 못했다. 2패 뿐. 잘 던져도 타선이 터지지 않아 승리를 놓치기 일쑤였다. 대다수 팬들은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에이스 투수가 8경기 동안 1승도 따내지 못하는 자체에 불만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류제국은 "처음 3~4경기에서는 승리가 없어도 내 스스로 '괜찮은 투구였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승리가 없으니 비난의 화살이 모두 나에게 돌아오더라"라며 "나 뿐 아니라 팀 성적까지 바닥을 쳤다. 모두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나도 내가 이럴줄은 몰랐는데 '무조건 나가 이겨야 된다', '에이스로서 연패를 끊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지배를 하며 내 공을 던지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시즌 도중 체중 감량을 시도하고, 안쓰던 스플리터를 구사하게 된 것도 이 부담감들을 떨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류제국의 올시즌 목표는 10승 이상을 거두며 팀을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현재 6승. 앞으로 많아야 4~5번의 등판이 남았기 때문에 10승 고지 정복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제국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내 개인 성적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팀이 4강에 무조건 올라야 한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만 생각하면 우리 팀은 충분히 4강에 오를 수 있다. 나도 과거를 잊고 지금부터 팀 4강을 위해 어깨가 빠지도록 던져보겠다"라고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