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 첫승' 신동훈 "김기태 감독님, 보고 싶습니다"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4-07-29 10:11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LG와 롯데의 프로야구 경기가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펼쳐 졌다. LG 신동훈이 6회 2사후 선발 신정락을 구원 등판 롯데 타선을 상대로 역투를 하고 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4.07.28/

"김기태 감독님, 보고 싶습니다."

28일 잠실 LG 트윈스-롯데 자이언츠전. LG 정의윤의 극적인 역전 결승 스리런포가 빛난 경기였지만, LG 승리의 숨은 공신이 있었다. 투수 신동훈이었다. 신동훈은 팀이 0-3으로 밀리던 6회 선발 신정락을 구원등판해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보통 지고 있는 경기에서 추격조 투수가 등판해 점수를 주면, 경기의 맥이 더 빠지기 마련인데 신인급 투수가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니 '한 번 해보자'라는 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결국, 7회말 LG는 한꺼번에 5점을 뽑으며 역전에 성공했고 윤지웅, 이동현, 봉중근 등 불펜 선배들은 1군 막내 투수의 생애 첫 승리를 지기 위해 더욱 이를 악 물고 던졌다. 투수 조장 마무리 봉중근은 세이브를 기록한 뒤 신동훈을 꼬옥 안아주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신동훈은 무명의 선수였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57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2012 시즌 3경기에 등판해 딱 4이닝을 소화했고 지난해에는 1군 출전 기록이 없었다. 올해도 5월 3일 간의 짧은 1군 나들이를 마친 후 27일 다시 1군 엔트리에 등록되는 기회를 잡았다. 또 며칠 있지 않아 다른 주전급 선수가 1군에 등록될 때 2군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제대로 사고를 쳤다.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그것도 팀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값진 승리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히 1승을 챙긴 것이 아니라, 이날 씩씩한 투구로 양상문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양 감독은 경기 후 "투구 템포가 좋았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칭찬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롯데전 침착한 투구를 생각한다면 당장 1군에서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LG와 롯데의 프로야구 경기가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펼쳐 졌다. 팀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행운의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된 신동훈이 마무리 봉중근에게 건네 받은 볼에 키스를 하고 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4.07.28/
프로에 데뷔하는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첫 승리. 얼마나 기뻤을까. 경기 후 만난 신동훈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손에 공 1개를 꼭 쥐고 있었다. 신동훈은 "봉중근 선배님께서 첫 승리공이라고 챙겨주셨다"며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을 태어나서 처음 직접 느껴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94년생 투수다. 프로선수가 아닌, 마치 고교 선수를 보는 듯한 순박한 외모. 말투도 어리바리해 귀엽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래도 야구 얘기를 할 때는 당찼다. 신동훈은 "첫 승리를 거둬서 기쁘지만 2이닝 연속 첫 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있었다. 1군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겨주시더라도 열심히 할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첫 승리에 대해 "2군에서 정말 고생하고 있는 코치 선생님들, 그리고 동료들이 만들어주신 승리라고 생각한다. 내 승리가 2군에서 고생하는 모든 분들께 힘이 됐으면 한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또, "기회를 주신 양상문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 그리고 선배님들께도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신동훈이라고 하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김기태 전 감독이다. 김 감독은 2012 시즌 무명의 고졸 신인 투수를 1군에 등록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었다. 하지만 신동훈이라는 선수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논란의 대타 사건 때문이었다. 2012년 9월 12일 잠실 SK 와이번스전에서 김 전 감독은 상대의 잦은 투수교체에 항의의 표시로 투수인 신동훈을 타석에 들어서게 했다. 신동훈은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삼진을 당하고 들어왔다. 이런 경기를 한 자체를 떠나, 투수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신인 선수의 첫 데뷔전을 타자로 치르게 했다는 것에서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렇다면 신동훈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신동훈은 "솔직히 크게 마음이 상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며 "오히려 그 날 이후로 코치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이 나를 더 많이 챙겨주셨다. 또, 팬분들도 많이 알아봐주시고 챙겨주셔서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승이 확정되는 순간, 고생하신 부모님과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또, 김기태 감독님의 얼굴도 떠올랐다"고 밝혔다.

사실 김 전 감독은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날 이후 어린 유망주 투수에게 잘못을 했다는 자책감을 항상 갖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신동훈을 더 챙겨주려 애썼다. 신동훈도 그 마음을 잘 안다. 신동훈은 "김기태 감독님이 계실 때 첫 승을 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감독님,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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