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기만행위, 전혀 활용하지 못한 두산 벤치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4-07-24 22:25


장맛비로 이틀 연속 취소가 된 두산과 SK의 잠실 경기가 24일 잠실 야구장에서 펼쳐 졌다. 팀의 새로운 마무리 역할을 맡은 SK 울프가 9회 1사 이후 마운드에 올라 두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포수 정상호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4.07.24/

24일 잠실 경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했다. SK 선발 밴 와트의 완벽한 투구.

SK의 적재적소 적시타. 결국 승부는 일찌감치 벌어졌다. 3, 4, 5회 SK는 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6-0. 그리고 8회 쐐기를 박는 추가점을 냈다.

경기 흐름 상 두산의 완벽한 패배였다. 나흘 간의 휴식을 앞두고 있는 두산으로서는 뼈아픈 1패였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한 패배였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 막판 나왔다. 6-0으로 앞서고 있는 SK의 7회 공격. 여기에서 두산 벤치의 신경을 건드리는 미묘한 장면이 나왔다.

1사 2루 상황에서 정상호가 삼진 아웃을 당하는 순간, 나주환이 3루 도루를 감행했다. 두산 벤치에서는 약간 황당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3루 도루를 할 필요가 있냐는 것. 하지만 엄격하게 보면 SK의 기만행위는 아니었다.

야구는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승패에 상관없는 도루와 번트를 하는 것은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불문율이 있다. 특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 불문율이다. 올 시즌 타고투저의 트렌드를 감안하면 SK 입장에서는 1점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두산의 팀타율은 2할9푼9리. 리그 1위 팀이다. 따라서 두산 벤치 입장에서는 언짢을 수 있지만, SK로서는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문제는 9회였다. 7-0으로 이미 전세가 완전히 기운 상황. 그런데 SK 벤치는 8회 2사 이후 이재영을 내세운 뒤 또 다시 마무리 울프를 9회 1사 이후 마운드로 내보냈다.


이 부분은 문제가 있다. 상대 기만행위는 도루와 번트에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니다. 쓸데없는 투수교체도 포함된다.

이미 SK 이만수 감독은 2013년 9월12일 당시 LG 김기태 감독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당시 LG가 0-3으로 뒤진 상황에서 9회 2사 2루 득점찬스를 맞았다. 그러자 SK는 이재영 대신 마무리 정우람을 투입했다. 김 감독은 기만행위라고 느낀 뒤 박용택의 대타로 투수 신동훈을 타석에 내세웠다. 사실상 경기를 포기하면서 상대 기만행위에 대해 강하게 어필했다.

당시 김기태 감독의 돌발행동은 논란이 있었다. 3점 차의 상황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만수 감독의 용병술은 적절했고, 김 감독의 대타작전은 약간 무모했다.

그런데 이번 케이스는 당시와는 레벨 자체가 달랐다. 아무리 타고투저의 시즌이라지만, 9회 1사 이후 SK는 7-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SK 입장에서는 이틀간의 우천취소 이후 중간계투진과 마무리의 컨디션 점검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9회 1사 이후 울프까지 교체를 한 것은 너무 심했다. 상대팀 기만행위에 가까웠다.

그런데 두산 벤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렀다. 울프로 교체된 뒤 홍성흔이 내야안타를 쳤지만, 김현수와 오재일이 아웃되며 경기가 종료됐다.

SK의 쓸데없는 투수교체도 문제였지만, 두산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최근 두산은 최악이다. 선발 투수진이 흔들리고 있고, 타격 사이클도 좋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수비 집중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된 22일 경기에서도 어설픈 수비로 실점을 허용했고, 이날도 두 차례의 수비실수로 패배를 자초했다. 탄탄했던 수비 집중력이 떨어진 가장 큰 요인은 점점 떨어지는 팀의 응집력에 있다. 당연히 사령탑은 이를 되살릴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LG 김기태 감독은 신동훈을 대타로 내세운 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팀 내부적으로는 많은 플러스 요인이 있었다. 모래알 같은 응집력이 이 사건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감독과 선수와의 신뢰관계도 더욱 굳건해졌다.

두산이 꼭 LG와 같은 식의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SK의 쓸데없는 투수교체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필요했다. 두산의 떨어진 응집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두산 벤치는 그런 '기회'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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