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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프로야구에는 노림수에 의존하는 타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일부 지도자들은 아예 노려치기를 지양하라고 말한다. 노려치기는 어떤 공이 들어올 지를 예측해 그에 맞춰 타격하는 것이다. 크게는 직구-변화구부터 몸쪽 혹은 바깥쪽 코스, 세밀하게는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구종을 예측해 타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호준은 13일까지 33타점으로 타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홈런 역시 8개로 공동 3위다. 1976년생으로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젊은 타자들 못지 않은 활약이다.
이호준은 13일 KIA와의 홈경기에서 5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이날 3안타를 추가하며 통산 1501안타를 기록했다. 0-2로 뒤진 3회 역전 스리런홈런을 시작으로, 추가점의 물꼬를 튼 6회 안타, 그리고 5-5 동점이된 9회말 무사 만루에서 터진 끝내기 안타까지. 그야말로 '원맨쇼'였다.
이호준은 3구까지는 정확히 그림을 그리고 들어갔다. 상대가 무슨 공을 던질 지 예측을 해놓은 것이다. 초구에 직구가 오고, 2구째엔 바깥쪽 체인지업, 그리고 다음엔 몸쪽으로 직구를 다시 붙인다는 것이었다. 이호준은 "3구까지는 계산을 하고 들어갔는데 그 이후로 넘어갔으면 '멘붕'이 왔을 것"이라며 웃었다.
쉬워보이는 계산이지만, 확률을 생각하면 절대 쉬운 게 아니다. 투수가 던지는 구종과 코스를 예상해 여기에 집중하면 분명 확률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호준은 이를 철저한 '분석'으로 극복한다. 직전 맞대결, 최근 투구패턴, 그리고 당일 투구에서 나타나는 특성까지 감안한 수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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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임준섭은 주무기인 커브를 많이 던지지 않았다. 97개의 공 중 단 9개에 불과했다. NC 벤치에선 계속 해서 이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이호준은 이전 맞대결과 이날 패턴을 파악해 커브 대신 체인지업을 공략할 공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호준은 NC 전력분석 시스템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타격, 상대의 투구를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물론 구종과 구속, 코스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이호준 같은 게스 히터들과는 분명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호준 외에도 '국민타자' 삼성 이승엽이나 두산 홍성흔 등이 대표적인 게스 히터다. '공 보고 공 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호준을 비롯해 이승엽 홍성흔 등 롱런하는 타자들을 보면, 게스 히팅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는 이처럼 남모를 노력도 있다.
이호준은 한국프로야구 역대 23번째 1500안타를 기록했다. 꾸준함이 없으면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이호준에게 게스 히팅으로 만든 안타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60~70%는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밸런스가 좋아서 나오는 안타"라고 답했다.
그런 그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점차 배터리의 수싸움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뻔히 보였을 패턴도 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이호준은 "요즘 애들이 그걸 아나보다. 변화구 던질 타이밍인데 한복판으로 직구를 던지고 그런다. 잘 안 된다"고 했다.
이호준은 1500안타에 이어 1000타점 달성을 앞두고 있다. 13일까지 987타점을 기록중이다. 지난 6일 1000타점 고지를 밟은 두산 홍성흔에 이어 역대 11번째 1000타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호준은 "사실 시즌 시작할 때 '1000타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록 달성을 앞두고 이를 의식하면 항상 잘 안 된다. 몇 개 안 남았으니 빨리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