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김선우(37) 카드였을까.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확실한 건 이벤트적인 요소만을 고려한 선택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김선우의 구위를 믿었고, 또 LG 트윈스 마운드 상황이 김선우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했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왜 김선우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속사정을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먼저 LG 선발진의 상황을 살펴보자. 사실 두산과의 개막전 선발은 새 외국인 투수 코리 리오단이 유력했다. 일본 오키나와 실전과 연습경기에서 무난한 투구를 했다. 구위와 컨디션 등을 종합해봤을 때 가장 믿을 만한 투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조심스러웠다. 한국무대를 경험한 투수라면 모를까, 개막전 선발등판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상대가 두산이기에 자칫 분위기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조금 더 편한 환경에서 첫 선발투구를 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낫다고 생각했다.
두산 타자들 훤히 꿰뚫고 있는 김선우
아무리 선발진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만약 김선우의 구위가 1군 경기에서 통하지 못할 것이라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김선우의 몸상태와 구위가 기대 이상이라는 점이다. 시범경기에서 직구 구속이 140km를 훌쩍 넘었다. 또 제구도 크게 문제가 없어보였다. 또 하나, 두산 타자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소가 됐다. 아무래도 투수가 타자들의 습관, 성향 등을 파악하며 던지면 조금 더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나를 떠나보낸 구단에 부활한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동기부여도 될 수 있다.
워낙 베테랑이기에 젊은 투수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심리적인 이점이 분명히 있다. 확실한 건, LG 코칭스태프가 즉흥적으로 김선우 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김선우 선발 등판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컨디션 조절부터 시범경기 등판 일정까지 모두 개막전 등판에 맞춰져 있었다.
김선우, 그리고 홈 개막전 류제국까지는 확정이다. 나머지 경기들 선발투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사숙고해보겠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생각이다. 김선우가 개막전에서 잘 던진다면, 굳이 김선우를 추후 로테이션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두산 이끌던 두 에이스, 이제는 적으로 만나다
물론, 팬들에게 재미있는 야구를 보여주고 싶다는 김 감독의 바람도 반영됐다. 김선우가 친정팀과의 경기에, 그것도 개막전 선발로 나선다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 감독은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팬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성적까지 챙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발을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데,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미디어데이에서 선발을 발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일단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김 감독의 입에서 '김선우'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미디어데이 현장은 술렁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카드라는 뜻이다. 일단은 김 감독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두산도 미디어데이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며 라이벌 간의 개막전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두산 송일수 감독은 김 감독에 앞서 "개막전 선발은 니퍼트"라고 힘차게 발표했다. 지난해까지 두산 마운드를 이끌었던 토종, 외국인 우완 에이스들이 이제는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송 감독이 한국어가 서툴러 통역이 송 감독의 출사표를 전했는데, 이를 듣고 있던 주장 홍성흔이 한마디 거들었다. 홍성흔은 "통역을 제대로 안 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LG를 잡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라고 짚고 넘어갔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래저래 역대 최고로 흥미로운 잠실 라이벌전이 2014 시즌 개막전으로 벌어진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