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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잠수함 김대우를 선발로 쓰는 이유는?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4-03-17 07:01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스프링캠프부터 선수에게 보직을 통보한다. 보통 캠프 기간 내내 경쟁을 통해 보직을 확정짓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선수에게 "선발로 준비해라" 혹은 "불펜이다"라는 식으로 미리 보직을 정해준다.

염 감독의 로드맵은 변하지 않는다. 선발이 구멍나면, 선발로 준비하던 2군 투수가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는 식이다. 지난해에도 철저히 이 원칙을 지켰고, 문성현과 오재영이 시즌 후반 선발로 자리를 잡아 포스트시즌까지 뛰었다.

캠프 때부터 정한 보직을 그대로 이어가는 건 분명한 장점이 있다. 선수가 방향성을 갖고 준비를 할 수 있다. 선발이 구멍났을 때, 중간계투로 던지던 선수 중 선발경험이 있거나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이는 투수가 그 자리를 메울 수도 있지만 투구수를 쉽게 끌어올리기 힘들다. 그동안 불펜에 몸이 최적화돼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염 감독처럼 캠프 때부터 1,2군 선수들의 보직을 정해놓는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2군에서 던지던 선발로테이션에 맞춰 1군에서 던지면 그만이다. 공 개수에도 문제가 없다.

염 감독은 지난해 8~9명 가량의 투수를 1군 선발 자원으로 분류해놨다. 기존 선발진에서 김병현과 김영민이 제 역할을 못하자, 선발과 롱릴리프를 겸하던 문성현과 오재영으로 빠르게 대체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김상수 장시환 등이 예비전력이었다.

16일 창원 마산구장. NC와의 시범경기에 언더핸드스로 김대우가 선발등판했다. 홍익대를 졸업한 김대우는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전체 67순위로 지명돼 1군에 얼굴을 비췄다. 데뷔전에서 공 11개로 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지면에 손이 닿을 듯한 낮은 각도의 투구가 돋보인다. 2011년 24경기에 등판해 2패 평균자책점 6.00을 기록했다.


넥센 언더핸드스로 투수 김대우. 스포츠조선 DB
김대우는 데뷔 시즌이 끝나자,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에서도 불펜투수로 뛰었다. 필승조나 마무리로 뛰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상무에서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복귀 후 김대우의 보직은 불펜이 아닌 선발이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부터 김대우에게 선발로 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대우는 16일 창원 NC전에서 첫 시범경기 등판을 가졌다. 공언한대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염 감독은 올시즌 6명의 선발투수를 기본으로 예비 자원들을 두고 시즌을 운영할 생각이다. 나이트와 밴헤켄 원투펀치에 강윤구 문성현 오재영이 뒤를 받친다. 금민철은 6선발로 상황에 따라 로테이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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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는 말 그대로 예비 자원이다. 염 감독은 "대우를 중간계투에 두면, 올라올 틈이 없다. 그래서 선발로 돌린 것이다. 그래야 기회가 더 많이 온다"고 말했다.

150㎞대 강속구를 던지는 파이어볼러 조상우의 가세로 넥센의 불펜진은 한층 두터워졌다. 지난해 1군에서 뛴 선수 중 2명 정도가 2군으로 내려가야 할 정도로 자리가 부족하다. 김대우를 불펜으로 준비시킨다면, 1군에서 쓸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성장을 위해서도 선발로 준비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염 감독은 "우리 팀에 언더핸드 선발투수가 없다. 선발로 준비하면, 선발과 불펜 모두 활용이 가능하다"며 "현재 대우의 제구력으론 승리조로 쓸 수 없다. 제구가 왔다 갔다 하는 상태에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럴 바엔 장기적으로 선발로 준비시키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2014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SK와이번즈의 시범경기가 14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강지광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3.14/
염 감독은 '미래'를 보고 있다. 김대우의 선발 기용이 전부가 아니다. 시범경기 들어 3개의 홈런포로 깜짝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이적생 강지광도 "시범경기에서 아무리 잘 해도 2군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못박은 상태다.

염 감독은 "지광이는 발전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타자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낮게 들어오는 공을 잘 공략한다. 하지만 2군에서 좀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1군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쓸 바엔 올리지 않는 게 낫다. 1군에 오면 바로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우와 강지광에서 나타나듯, 염 감독에겐 선수들의 기용법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당장 경쟁을 통해 이들의 기를 죽이기 보다는 2군에서 성장할 시간을 갖고 1군에 올라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김대우는 이날 첫 선발등판에서 4이닝 동안 5안타 1볼넷을 내주고 삼진 3개를 잡아내며 2실점했다. 군제대 후 복귀전 치고 나쁘지 않았다. 강지광은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고, 두 차례나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염 감독은 팀의 미래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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