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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통합 3연패를 이끈 베테랑 3총사 진갑용 이승엽 배영수가 필드에 모였다. 동료가 아닌 적이었다. 세 사람은 3일 경기도 안성 베네스트 GC에서 열린 제32회 야구인골프대회(스포츠조선-KBO 공동주최, 삼성라이온즈 후원)에 참가해 한조로 경기를 치르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승부에 세계에서는 꼭 이겨야 하는 프로선수들. 친선의 차원을 넘어 강한 승부욕이 발동됐다. 하지만 구력, 실력에서 차이가 났다. 그렇게 3인3색의 골프쇼가 펼쳐졌다.
많은 라운딩 경험이 있어 여유가 넘쳤다. 캐디와 차분하게 이것저것 완벽한 샷을 만들기 위한 상의한 후 스윙에 나섰다. 온갖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해야하는 포수다운 모습. 물론 이 뿐 아니었다.
이승엽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야구인골프대회에 출전한 진갑용은 "평소에도 가끔 만나 골프를 친다. 후배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면 정말 재밌다"며 즐거워했다. 진갑용은 18홀 97타를 기록했다. 그 후 "오늘 코스 정말 어렵지 않았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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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에서는 꼭 승리해야 한다는 이승엽 만의 승부욕이 없었다면 과연 최고 타자로서 한국, 일본 무대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이승엽의 승부욕은 필드에서도 그대로였다. 이승엽은 이번 대회 참가를 확정짓고 1주일 전 대구 인근의 골프장에서 배영수와 비밀리에 연습 라운드를 가졌다. 매 홀을 옮길 때마다 "이번 홀은 내가 타수를 꼭 줄일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전의를 불태웠다. 진갑용, 배영수의 퍼팅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경쟁에 불을 지폈다. 진갑용이 티샷으로 공을 보내면, 그보다 더 멀리 보내겠다며 힘차게 스윙을 했다. 또, 진갑용의 타구가 붕 뜨면 옆에서 "캐처 플라이(포수 플라이)"라고 외치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샷 하나하나에 보여주는 리액션도 재밌었다. 드라이브샷이 벙커에 빠지거나 오비(Out of Bounds)가 나는 상황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파4 홀에서 버디를 성공시키자 같은조 동료들을 향해 손바닥 키스까지 날리며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타석에서는 언제나 냉정하던 국민타자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기대를 모았던 선수는 배영수였다. 배영수는 골프계의 미남스타 배상문 프로와 호형호제하는 사이. 배 프로의 비법을 전수받았다면 이번 대회 강력한 다크호스로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영수는 "이제 골프를 친지 1년 조금 넘은 것 같다"며 "배 프로에게도 많이 배우지 못했다. 나는 골프 초보다"라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확인 결과 겸손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배영수가 스윙만 했다 하면 공은 홀 사이드의 언덕배기로 사라지거나 벙커에 빠지기 일쑤였다. 공을 치는 것보다 산에 올라 나무숲에서 캐디와 함께 공을 찾느라 더 바빴다. 계속해서 퍼팅이 짧자 이승엽에게 "번트좀 그만 대라"라는 타박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도 의욕만큼은 훌륭했다. 매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진갑용은 의욕에 넘쳐 몸에 힘이들어간 채 스윙을 하는 후배를 향해 "힘을 반만 줘도 정확하게만 치면 훨씬 멀리 날아간다"는 조언을 했다. 18홀 전체 114타를 기록하며 꼴찌에서 두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후 배영수는 "골프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단, 배영수가 1등인 건 있었다. 클럽 커버는 일본에서 직수입했다며 자랑에 열을 올렸다. 베테랑 투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침팬지와 원피스 모양의 커버였다.
안성=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