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레전드' 향수 자극한 한일 슈퍼게임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12-01 09:53



어느 스포츠든 한일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야구 역시 과거 한일 슈퍼게임이 존재했다. 90년대 세 차례에 걸친 대회에서 한국은 한 번도 우세를 점한 적이 없었다. 당시로선 한 단계 위라는 일본야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난해 7월 열린 한일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 이어 1년만에 양국을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모였다. 이번엔 '한일프로야구 레전드 슈퍼게임'이란 타이틀을 달고 뭉쳤다. 과거 슈퍼게임의 향수를 떠올릴 법한 타이틀. 30일 인천 문학구장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수천명의 관중이 운집해 왕년의 스타들의 플레이에 환호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친선전 맞네!

"친선경기인데 뭐 어때. 그렇게 합시다!"

경기 전 한국 레전드팀 사령탑을 맡은 선동열 감독은 일본팀 관계자가 양해를 구하자 '쿨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경기 도중 교체아웃됐어도 다시 투입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총 31명의 선수가 나선 한국팀과 달리, 원정팀인 일본은 선수가 18명에 불과했다. 야구는 한 번 교체돼 나오면 다시 투입되는 게 불가능하지만, 선 감독은 "일본 선수가 너무 적더라. 친선전인데 뭐 어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경기 전엔 역시 '엄살'이 대세였다. 지난해에 비해 선수들의 연령대가 대폭 낮아졌음에도 다들 '햄스트링이 올라오면 어쩌나', '이러다 무릎 나간다'며 몸을 사리기 바빴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친선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선발로 나선 한화 송진우 코치는 1회에만 솔로홈런 2방을 얻어맞았다. 두번째 홈런은 올해까지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선수로 뛰고 은퇴한 야마자키(전 라쿠텐)에게 맞았다. 한복판으로 몰린 공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잡아당겼다.

사실 한국 레전드팀은 경기 전부터 상대를 경계했다. 지난해 0대5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일본이 젊은 선수들을 대거 선발했고, 합숙훈련까지 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올시즌 뒤 은퇴한 박경완 SK 2군 감독에게 선발 포수를 맡기고, 최근에 은퇴한 한화 이종범 코치, 박재홍 해설위원 등을 전면에 배치했다. 하지만 일본팀의 페이스는 생각 이상이었다.


11월3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2013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슈퍼게임'이 펼쳐졌다. 한국 레전드 팀은 선동열(플레잉감독), 양준혁, 이종범, 송진우, 장종훈 등이 참가하며 일본 레전드 팀은 사사키(플레잉감독), 구와타, 다카츠, 고쿠보, 마츠모토 등이 참여했다. 선발로 등판한 송진우가 1회 일본 야마사키에게 솔로포를 허용했다. 야마사키가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사이에 웃음을 보이고 있는 송진우.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11.30

이종범의 도루, 김원형-박경완 배터리. 볼거리 가득!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경기 전 "도루는 무슨 도루냐. 다친다"며 손사래를 쳤던 한화 이종범 코치는 좌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곧바로 2루를 훔쳤다. 1번-유격수로 나서 신인시절을 재현해 전성기 못지 않은 발놀림을 선보였다. 이어진 1사 3루. "망신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박재홍 해설위원은 은퇴한지 1년밖에 안 된 실력을 과시했다. 1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첫 타점을 만들어냈다.

2회초 1사 1루서는 녹슬지 않은 송진우의 수비실력을 볼 수 있었다. 투구 직후 자신 앞으로 온 공에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해 병살타를 만들어냈다. 3회 두번째 투수로 나선 한화 정민철 코치의 난조로 4실점했지만, 3루수로 나선 안경현 해설위원의 백핸드 캐치 등 볼거리는 여전했다.

4회에는 SK 김원형 코치와 박경완 2군 감독의 배터리도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쌍방울과 SK까지 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둘이었다. 김원형은 이후 포수가 신경현으로 바뀌었음에도 수준급 완급조절능력으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포크볼의 각도는 여전히 예리했다.

4회 1점을 따라가는 과정에선 양준혁 해설위원의 현역 시절 만세타법을 볼 수 있었다. 정확한 타격으로 우전안타를 만들어냈고, 이후 상대 실책으로 2-6으로 추격에 나섰다.

이날 한국팀의 MVP는 6회부터 등판한 KIA 이대진 코치였다. 시즌 뒤 한화에서 친정팀인 KIA로 이동한 이 코치는 전날 귀국했음에도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선 감독은 경기 전부터 "우리 팀에선 이대진이 제일 좋으니 마무리로 쓰고 싶다. 상황에 따라 앞에 나올 수도 있다"며 강한 믿음을 보였다. 이 코치는 선배의 기대에 부응했다.


11월3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2013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슈퍼게임'이 펼쳐졌다. 한국 레전드 팀은 선동열(플레잉감독), 양준혁, 이종범, 송진우, 장종훈 등이 참가하며 일본 레전드 팀은 사사키(플레잉감독), 구와타, 다카츠, 고쿠보, 마츠모토 등이 참여했다. 1회 1사 3루에서 박재홍의 희생플라이 타구 때 3루주자 이종범이 득점에 성공했다.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이종범과 박재홍.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11.30
'최고 136㎞' 3이닝 무실점 이대진, "KIA 투수들 동기부여됐으면…"

5회 진행된 '어깨왕 챌린지' 이벤트에서 홈플레이트에서 외야로 94m, 93m를 던져 준우승을 차지한 이 코치는 몸이 완전히 풀렸는지 최고구속 136㎞의 공을 뿌리며 현역 못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일본팀 선수들도 김원형과 이대진에게 차례로 당했다. 공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이 코치는 삼진 1개씩을 포함해 6,7회를 모두 삼자범퇴로 마쳤다.

이 코치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손이 움켜쥐지 않을 정도여지만, 선 감독의 요청에 또다시 마운드로 향했다. 6회 2점을 따라간 상황에서 믿을 건 이대진 뿐이었다.

직구가 잘 통하지 않자 변화구 위주로 갔다. 현역 시절을 방불케 하는 낙차 큰 커브가 돋보였다. 여기에 슬라이더,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섞었다. 1사 1,2루 위기를 맞았지만, 실점은 없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투수 앞 직선타구. 공을 던진 뒤 날렵한 동작으로 타구를 낚아내는 장면이 여느 현역선수 못지 않았다.

승리는 일본팀의 몫이었다. 6대5, 한국은 끝까지 따라갔지만 9회말 무사 2,3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그래도 8회 2사 2,3루 찬스 때 이종범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석에서 '이종범~ 이종범~ 안타 이종범~'이라는 현역 시절 응원가가 울려퍼질 정도로 '슈퍼게임'다운 분위기가 났다.

일본은 유격수로 나선 무라카미가 두 차례나 다이빙캐치를 선보였고, 안타성 타구를 뜬공인 것처럼 페이크 동작을 해 주자를 묶어두기도 했다. 은퇴했어도 여전히 세밀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9회 1사 2,3루서 나온 양준혁의 2루수 앞 땅볼 땐 포수 죠즈메가 홈에서 최익성의 슬라이딩을 완벽히 블로킹해내 동점을 막기도 했다.

경기 후 한국팀 MVP로 선정된 이대진 코치는 "2012년 여름 LG 2군에서 던진 뒤로 처음 던졌다. 감독님이 가다가 잘 던지면 계속 간다고 했는데 8회 또 나가라고 하시더라. 의외로 변화구가 잘 통했다"며 웃었다.

그는 "언젠간 돌아올 친정팀이었다. 한화 김응용 감독님께 죄송하다. 고향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오늘 잘 던진 게 투수들한테 먹히지 않을까. KIA 투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주고 싶었다. 변화구로 언제든 스트라이크를 넣을 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11월3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2013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슈퍼게임'이 펼쳐졌다. 한국 레전드 팀은 선동열(플레잉감독), 양준혁, 이종범, 송진우, 장종훈 등이 참가하며 일본 레전드 팀은 사사키(플레잉감독), 구와타, 다카츠, 고쿠보, 마츠모토 등이 참여했다. 5회 클리닝 타임 때 어깨왕 첼린지 이벤트가 열렸다. 이대진이 혼신을 다해 투구하고 있다.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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