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계약 보도가 나올 때마다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은 "그 액수가 말이 되느냐"고 말한다. 또 "선수 몸값 거품이 너무 심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구단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던 이들도 정작 FA 계약을 할 땐 그 말도 안 된다던 액수를 선수들에게 제시한다. 국내 프로야구 전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구단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번 FA시즌은 특히 대박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해였다. 강민호 이용규 정근우 장원삼 등 스타급 선수들이 많이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FA에서 4년간 50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김주찬(KIA)을 기준으로 해 이들의 몸값이 5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강민호는 역대 최고액인 4년간 60억원을 뛰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리고 강민호가 실제로 4년간 75억원이란 액수에 계약을 함으로써 예상은 현실이 됐다.
75억원은 일반인들에게도 엄청난 액수지만 사실 구단에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올시즌 삼성의 개막전 엔트리 26명의 연봉 총액은 49억원이었다. 비록 4년간 총액이지만 강민호가 우승팀 삼성의 1군 연봉보다도 많은 것이다.
지난 2010년 롯데가 벌어들인 돈은 총 330억원이었다. 이 중 관중 수입이 70억원이었고, 상품판매, 중계권료 등 마케팅 수익이 140억원이었다. 나머지 120억원은 구단이 광고비 명목으로 주는 지원금이었다. 당시 사직구장의 관중은 117만5665명이었다. 사직구장에 찾아오는 100만명 이상의 관중 수입이 고스란히 강민호의 통장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모그룹의 지원금 없이는 자립을 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임에도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최근 들어 부쩍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다보니 성적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예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계약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기준이 돼 다음 FA들은 그보다 더 높은 액수를 요구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류현진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LA 다저스로 보낸 한화는 그해 FA를 한명도 잡지 않았고 그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올시즌 NC에도 뒤져 꼴찌를 한 한화는 이번 FA시장에서는 외부 FA를 데려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도 강민호를 잡는 것에 대한 압박이 거셌다. 롯데는 최근 주축선수였던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등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올시즌 4강 탈락에 관중은 무려 44%나 감소했다. 스타 선수들을 모두 잃었다는 것에 대한 팬들의 비난이 컸고, 관중 감소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강민호마저 잡지 못한다면 더 많은 팬들이 등돌릴 것이 뻔했다.
아무리 팬들의 요구가 크더라도 돈이 없다면 잡을 수 없다. 구단만의 살림살이로는 1년 입장수입을 그대로 한 선수에게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모그룹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룹 역시 팀 성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전력 강화를 위해선 큰 돈을 쓸 수 있도록 한다.
이제 역대 FA 최고액은 75억원이 됐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기준점'이 75억원이 됐으니 KT까지 참여하는 내년 FA시장에선 100억원짜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구단들은 경제논리와는 동떨어져 해가 거듭될수록 천정부지로 뛰는 FA의 몸값이 기형적이라는 지적에는 백분 공감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 팀이 FA를 잡아야 할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지갑을 탈탈 터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구단들의 이런 마인드가 고쳐지지 않는 한 미친 FA 시장이 진정되길 바라는 건 요원한 일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프로야구 FA 시장만은 별천지와 같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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