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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태, 벼랑 끝에서 얻은 깨우침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3-09-17 10:25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2013 프로야구 경기가 11일 군산구장에서 열렸다. 5회초 KIA 선발투수 박경태가 왼손 엄지 마디부분에서 피가나는 부상을 입은 채 공을 던지고 있다. 이 부상은 자신의 검지 손톱이 공을 던지며 엄지를 찔러 생긴 부상이다. 박경태는 흐르는 피를 유니폼에 닦아가며 투구를 한 끝에 5회를 무실점으로 마치고 내려왔다. 이후 6회에도 박경태는 마운드에 올랐다.
군산=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2013.09.11/



'네 멋대로 해라.'

드라마 제목이 아니다. KIA 투수 박경태(27)가 벼랑 끝에서 던진 화두. 이도 저도 잘 안 풀릴 때, 때론 이판 사판의 마음가짐이 새로운 발견을 이끌 때가 있다.

박경태는 최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지난 11일 군산 월명구장에서 열린 SK전. 선발 등판한 박경태는 환상적인 피칭을 했다. 7⅔이닝 동안 4피안타 1실점(비자책). 고질이던 볼넷은 3개 뿐이었다.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값진 투구였다.

16일 한화전을 앞둔 대전구장. 올시즌 후 군입대 선수들을 묻자 선동열 감독은 "나지완 홍재호 이준호 박경태 정도가 가야할 나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박경태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말 끝에 "일단 모레(18일 사직 롯데전)에 던진다"고 했다. 남은 시즌, 지켜본 뒤 최종 결정하겠다는 뉘앙스다.

당사자를 만났다. 우선 최근 호투의 비결을 물었다.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선발 등판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날 못 던지면 남은 시즌 다시 불펜으로 갈 테니까…. 하루살이라고 해야하나? 어차피 군대가야 하니까 하고 싶은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경기 전 포수 (백)용환이한테 (결과에) 신경쓰지 말고 재미있게 해보자고 했어요. 편하게 던지니까 포크볼도 잘 떨어지더라구요." 어떤 마음이었을까. "김정수 코치님께서 '어떻게 던질래?'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코치님처럼 던질래요. 볼 던진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농담 했어요.(웃음)" 현역 시절 '까치'로 불렸던 김 코치. 제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타자를 위축시키는 와일드한 피칭으로 포스트시즌을 지배했던 좌완 투수. 박경태로선 틀에 박힌 얌전한 투구의 틀을 깨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오히려 잘 풀렸다. "6회쯤 되니까 마운드에서 던지는게 참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최)정이 형한테도 피해가지 않고 공을 던졌어요." 뜻대로 풀리지 않아 어두웠던 마운드. 색깔이 밝아졌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지는 '절실함'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그의 말대로 박경태는 어쩌면 '하루살이'일지 모른다. 올시즌 끝나고 바로 군입대를 할지 1년 유예를 더 받을 수 있을지 본인도 모른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매 경기 재미있고 후회 없이 던져보려구요."

매 시즌 전지훈련에서 마법같은 피칭으로 기대감을 높이지만 실망으로 끝났던 만년 좌완 유망주. '군 입대'란 벼랑 끝에 선 박경태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즌 등판 결과에 따라 1년 더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KIA의 새로운 좌완 에이스로….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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