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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돈으로 말한다.
53경기를 남긴 시점. 욕심을 내도 괜찮지 않을까. "타격왕이요? 에이, 거기까지는 욕심 없어요. 2009년에 기록한 최고 타율이 2할9푼대(0.293)였으니까 그거 보다 높으면 만족이에요."
1m88, 100kg의 거구에 물흐르는듯한 부드러운 스윙. 한 눈에 봐도 천생 거포다. 하지만 채태인은 완벽 부활을 위해 장타 욕심을 잠시 접었다. "사실 예전에 가장 해보고 싶은 타이틀은 홈런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보니 홈런타자가 아니었더라구요."
지난해 2할7리에서 3할6푼 타율로의 대반전. 비결이 뭘까. "돈이 깎였잖아요." 심플한 대답이 돌아온다. 단지 그것 뿐일까. "타석에서 조금 편해졌어요. 이제는 세게 친다는 생각을 안해요. 그냥 공만 배트 중심에 맞힌다는 기분으로 들어가요. 그러다보니 희한한 안타(텍사스 히트)도 잘 나오고…." 채태인이 펼치고 있는 반전드라마. 그 끝은 어디일까. 데뷔 첫 타이틀 획득과 "병호 있잖아요"라며 손사래치는 1루 골든글러브도 꿈만은 아니다.
채태인은 지난해까지 2년을 연이어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부산상고 시절 전도유망한 좌완 투수였던 채태인은 2001년 미국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으나 그해 왼쪽 어깨 수술 후 재기에 실패, 2005년 방출당했다.
그러고는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원, 연봉 5천만원의 조건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으며 타자로 전격 전향했다.
고교 시절 화랑대기 우승 당시 타점상을 받는 등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장타력과 정교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타자로 맞은 첫 시즌에서 채태인은 타율 0.221로 인상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적응기를 거치며 조금씩 방망이를 날카롭게 세웠다.
2009년 타율 0.293에 홈런 17개, 72타점 58득점을 쌓은 채태인은 2010년에도 타율 0.292 14홈런 54타점 48득점으로 거뜬히 한 몫을 소화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시련이 찾아 왔다.
2010년 8월 파울 플라이 타구를 잡다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그는 이듬해 뇌진탕 증세와 허리 통증까지 겹쳐 눈물겨운 한 시즌을 보냈다.
2011시즌 타율이 0.220으로 뚝 떨어졌고 지난 시즌에는 같은 포지션을 맡는 이승엽이 돌아와 팀 내 입지까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타율 0.207로 도무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성적은 곧바로 연봉으로 연결됐다. 2년간 부진은 연봉의 대폭 삭감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억대 연봉을 받던 채태인은 무려 6천만원(54.5%)이 깎인 5천만원에 올 시즌 삼성과 재계약했다.
심지어는 팀의 1차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되기까지 했으나 이는 채태인에게 자극제가 된 모양새다.
채태인은 자신의 부활을 기다려준 팀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즌 초반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지난주에는 홈런 하나를 포함, 3경기에서 9타수 4안타를 치고 타점 3개에 득점 4개를 쓸어담았다.
채태인은 15일 현재 올 시즌 타율 0.380으로 팀 내에서 가장 빼어난 타격감을 선보인다.
한 차례 풍파를 겪은 그가 올 시즌 '새옹지마'의 반등 스토리를 써나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