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야구팬으로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전 국가평의회의장 피델 카스트로가 야구를 국기로 삼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고 한다. 쿠바는 1980년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제대회 151연승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올림픽에서는 3번의 금메달(시범종목 포함)을 획득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전 국제야구연맹(IBAF) 주최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25번이나 제패했다.
그러나 적성국인 미국과 국교가 성립되지 않아 쿠바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지금까지도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쿠바를 탈출해 제3국으로 망명을 한 뒤 미국으로 들어가는 절차를 밟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제대회에 참가했다가 대표팀을 이탈해 망명을 시도한 선수가 수없이 많았다. 현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LA 다저스 야시엘 푸이그도 이같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 끝에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일단 쿠바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게 되면 상당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심은 아마야구 최강인 쿠바 자국 리그에서 정상급 실력을 과시한 이들이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역대 쿠바 출신으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는 라파엘 팔메이로다. 팔메이로는 15세에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 두 차례의 신인드래프트를 거쳐 미시시피 주립대 시절인 85년 시카고 컵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정작 그가 전성기를 보낸 팀은 컵스가 아니라 텍사스 레인저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 특히 볼티모어에서는 칼 립켄 주니어와 함께 팀의 리더로서 팀을 두 차례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올려놓으며 쿠바 야구의 저력을 보여줬다. 텍사스 시절에는 이반 로드리게스, 후안 곤잘레스 등과 함께 강타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569홈런, 3020안타를 기록하며 역대 4번째로 500홈런-3000안타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텍사스 시절 그의 동료였던 호세 칸세코가 은퇴 후 자서전에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던 선수들 명단에 팔메이로를 포함시키는 바람에 모든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칸세코의 자서전 파문이 일어난 뒤인 2010년 팔메이로는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이 생겼지만, 기자단 투표에서 11%의 득표율에 그쳐 입성에 실패했다.
투수 중에서는 리반 에르난데스가 대표적인 쿠바 출신 메이저리거였다. 에르난데스처럼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꾸준한 활약을 펼친 쿠바 출신 선수도 없다. 95년 쿠바를 탈출해 미국에 입성한 에르난데스는 96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와 계약을 하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97년이다. 당시 플로리다의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정규시즌서 9승을 올린 에르난데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2승을 따내며 MVP에 올랐다. 그는 메이저리그 17시즌 동안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애리조나, 미네소타 등 9개 팀 소속으로 통산 178승을 기록하며 쿠바 출신 투수로는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밀워키에서 3승을 거둔 뒤 FA 자격을 얻었지만, 새 팀을 얻지 못하고 사실상 은퇴를 한 상황이다.
현역 선수중에는 다저스의 푸이그와 신시내티의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푸이그는 지난해 다저스와 7년간 4200만달러의 거액에 계약을 했을 정도로 공수주에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미국 전역에 돌풍을 일으키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류현진와 수영 세리머니를 펼쳐 국내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채프먼은 추신수의 동료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간다. 채프먼은 올시즌 15일 현재 32경기에 나가 17세이브를 올리며 신시내티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붙박이 마무리로 등장해 38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51을 기록하며 특급 투수 반열에 오른 채프먼은 지난 겨울 선발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팀 마운드 사정 때문에 본래 직책인 마무리를 다시 맡게 됐다. 그의 강점은 100마일에 이르는 강속구다. 쿠바 출신 투수들이 대부분 빠른 직구를 주무기로 삼고 있지만 채프먼의 직구는 급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구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올라 있는 쿠바 출신 선수는 모두 14명으로 90년대 후반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