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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넥센전 희대의 오심, 왜 최악이었나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3-06-15 23:15 | 최종수정 2013-06-16 07:33


KIA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3 프로야구 경기가 9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9회말 2사 1, 3루 넥센 박병호 타석 때 KIA 조규제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앤서니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내려오자 넥센 염경엽 감독과 이강철 수석코치가 나와 두 번 올라간 것 아니냐며 항의하고 있다.
목동=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2013.06.09/

한마디로 최악의 오심이었다.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넥센의 경기. 연승을 이어가고자 하는 LG와 연패를 끊어야 하는 넥센은 각각 팀의 에이스인 리즈와 나이트를 내세워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예상대로 투수전으로 팽팽하게 흘렀다. 하지만 승부는 선수들의 플레이가 아닌 5회말 어처구니 없는 심판 판정 하나에 갈리고 말았다. 0-0으로 양팀이 맞서던 상황에서 2사 만루 LG의 찬스이자 넥센의 위기였다. LG 박용택이 나이트의 공을 잘 밀어쳤지만 몸을 날린 넥센 3루수 김민성의 글러브 속에 타구가 빨려들어갔다. 김민성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2루수 서건창에게 공을 던졌다. 모두가 아웃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2루심 박근영 심판은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왜 최악의 오심이었을까.

흔히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얘기한다. 현장의 감독 및 코칭스태프, 선수들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자주자가 1루에서 간발의 차이로 아웃이 됐다고 하자. 눈으로 보는 심판도 있고, 귀를 활용해 미트에 공이 들어가는 소리가 먼저인지 아니면 주자가 베이스를 밟는 소리가 먼저인지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방법이 어떻든 심판은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판단한다. 심판도 사람이다. 1000분의 1초까지 세밀하게 상황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런 경우, TV 중계의 느린 화면을 통해 확인을 했을 때 정말 미세한 차이로 심판의 판정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큰 반향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억울한 구단도, 감독도, 선수도, 팬들도 심판이라는 직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오심에 팬들의 성토가 이어지는건 이유가 있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단 한 순간 일어나는 작은 사건 하나로도 경기의 승패가 바뀐다. 물론 단순히 경기의 흐름을 바꿔, 넥센이 패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오심이기에 지나쳤다는게 아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모두의 공감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판정으로 명품 경기가 단숨에 질 낮은 경기로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양팀의 신 라이벌전을 보기 위해 이날 잠실구장에는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2만3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운집해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선수들도 무더운 날씨 속에 관중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두 선발투수는 매이닝 위기를 맞으면서도 아슬아슬 무실점 경기를 이어갔고, 툭 건드리면 한쪽이 먼저 터질 듯한 숨막히는 기운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선수와 팬 모두, 이번 시즌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한 경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오심 하나로 모든게 엉망이 돼버렸다. 진 팀은 당연하고, 이긴 팀도 찝찝한 최악의 상황 말이다.

정황상 세이프를 선언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육안으로도 서건창이 베이스를 밟고 지나간 후 오지환의 손이 베이스에 닿는게 보였다. 서건창의 발이 닿는 순간 오지환의 손은 베이스에서 적어도 30cm 이상은 떨어져보였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도 "2루에서 아웃, 아 세이프가 선언됩니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육안으로 정확하게 발과 손의 교차 순간을 보지 못했다 해도, 박용택의 타구 속도와 김민성의 수비 속도, 그리고 서건창이 베이스를 밟고 지나치는 큰 장면 등을 고려했어도 무조건 아웃 타이밍이었다. 만약, 이 순간을 두고 오지환의 손이 빨랐다고 봤다면 심판의 집중력 부족을 꼬집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세이프로 판정할 수 있는 요인은 서건창이 베이스를 밟고 지나간 후에 글러브에 공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건창은 베이스를 밟기 전 공을 포구했고 확실하게 베이스를 밟은 후 3루측 덕아웃쪽으로 뛰어갔다. 중견수 방면에서 잡은 TV 중계 화면을 보면 박 심판이 이 장면을 바로 앞에서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이 역시 판단하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심판들이 선수들에 가려 베이스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박 심판의 시야를 가리는 어떠한 방해요소도 없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상황이 발생한 순간 자신있게 세이프 판정을 내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서건창이 아웃인줄 알고 한참이나 덕아웃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뒤늦게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보통 이런 경우, 확신에 찬 근거가 있다면 심판의 포즈가 커지고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졌다는 등 이유를 설명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하지만 그런 장면도 전혀 없었다. 어떤 상황 하나도 심판의 편을 들어줄 장면이 없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항의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던 나이트가 그렇게 펄쩍펄쩍 뛰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넥센 염경엽 감독은 세게 항의하지도 못하고 "손이 먼저 닿았다"는 설명을 듣고 씁쓸하게 덕아웃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그래도 김병현의 공 투척 사건으로 심판부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넥센이다. 여기서 한 번 더 판정 문제로 거세게 항의를 했다가는, 시즌 내내 심판들에게 소위 말해 찍힐 수 있는 상황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야구 심판들은 지난해 야구중계를 하고 있는 방송사들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너무 집요하게 느린 화면을 통해 문제 장면을 보여주면 심판들의 권위가 떨어진다는게 이유였다. 맞는 말이다. 권위가 있어야 심판의 판정을 선수들이 따른다. 하지만 초고속 카메라를 사람의 눈이 따라갈 수 없기에 그 찰나의 순간을 지나치게 방송하는 것이 심판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오심이 이어진다면, TV 중계 느린 화면이 아니라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다 해도 크게 할 말이 없을 듯 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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