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感)'과 '매뉴얼', 그 승부의 결과는?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3-06-02 19:48


야구에 정답이란 없다. 다행히 잘 맞아 떨어지면 기막힌 전술이지만, 반대로 안 맞으면 패배로 이어지는 실패다.

2일 잠실구장서 열린 두산과 넥센전에서 좋은 사례가 나왔다. 경기 전부터 선발 엔트리 구성에 대한 벤치의 전략이 완전히 갈렸기 때문. 이를테면 두산의 '감'과 넥센의 '매뉴얼'이 맞붙은 셈이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경기 전 선발 라인업에 대해 "타격 훈련이 끝난 후 컨디션에 따라 결정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비록 전날 경기서 11안타를 터뜨린 타격의 힘으로 8대4로 승리하며 4연패를 끊어냈지만, '타격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일종의 야구계 격언을 그대로 실천하든 듯 보였다.

경기를 1시간 앞두고 발표된 타격 엔트리에서 전날 경기에 나섰던 정수빈과 이종욱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3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했던 이종욱 대신 박건우가 선발 중견수로 나섰고, 윤석민이 3루수로 기용됐다. 아무래도 이날 넥센의 선발 투수가 좌완 밴헤켄이라는 점을 감안, 왼손 타자 2명을 빼고 오른손 타자 2명을 올린 것이다. 김 감독은 이번 넥센과의 3연전에서 단 한번도 똑같은 라인업을 적어내지 않은 셈이다.

반면 넥센 염경엽 감독은 이틀 연속 똑같은 선발 엔트리를 내세웠다. 비록 전날 패하긴 했지만 두산의 선발투수가 2경기 연속 좌완인데다, 선수들이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해낸다면 굳이 선수 기용에 손을 대지 않는 '매뉴얼 야구'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유니폼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타격과 투구를 해야 하는 것이라는 얘기. 1일 현재 넥센은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으니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염 감독은 "만약 엔트리에 교체가 있다면 늦어도 전날 밤까지는 알려준다. 그래야 취침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와 동시에, 한번이라도 더 상대투수를 연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민우를 이틀 연속 톱타자에 기용한 것이 그나마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는데, 이는 서건창과 장기영 등 테이블세터들이 최근 좋지 않기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약간의 변형 작전이라는 소개도 곁들였다. 또 김민우에게 경기 하루 전 톱타자로 나설 것이라 언질을 줬다고도 설명했다.

물론 이는 양 팀 선발투수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했다. 넥센 밴헤켄은 팀의 원투펀치 역할을 하고 있는 검증된 선발인데다, 두산 타자들이 그동안 쉽게 공략해내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올 시즌 처음으로 만나 7안타 4득점을 올리긴 했지만,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다.

반면 두산 유희관은 선발 자원인 올슨과 이용찬의 이탈로 인한 '땜방 선발'이다. 2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것이 고작이었다. 130㎞대의 직구에 불과하지만, 좀처럼 가운데로 공이 몰리지 않는 기막힌 제구력으로 승부를 하는 투수다. 경기 전 염 감독은 "(유희관의) 투구 분석표를 봐도 단 1개도 가운데 몰리지 않을 정도로 제구력이 좋다. 몸쪽 승부도 잘 하는 투수다. 선수들에게 이를 잘 숙지시켰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염 감독의 '매뉴얼 야구'가 우세였다. 1회초 서건창과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까지 4안타가 집중되면서 가볍게 3점을 선취한 것. 하지만 이후엔 '감(感) 야구'가 앞섰다. 넥센 타자들이 이후 7회까지 유희관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반면 두산 타자들은 밴헤켄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박건우가 1회말 공격의 물꼬를 트는 안타를 때린 후 넥센 1루수 김민우의 2루 송구 실패를 이용해 3루까지 내달린 끝에 첫 득점에 성공하는 등 2안타 2득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윤석민은 1-3으로 뒤진 상황에서 2회 동점 2점포를 날리는 등 3안타 2타점으로 만점 활약을 펼치며 팀의 11대4 대승에 일조했다.

어쨌든 이날 승부는 '느낌'이 '공식'을 앞선 셈이다. 하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승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역시 야구에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잠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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