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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프로스포츠에서 자주 강조되는 말이 '동업자 정신'이다.
이날 경기서는 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2가지 장면이 연출됐다. 이른바 '최규순의 야구교실 사건'과 '채태인-김태우의 충돌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관련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온라인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19일 마산구장에서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갈등은 없었다. 관련자들 모두 '역지사지'의 미덕을 보여줬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를 두고 "이런 게 동업자 정신 아니겠느냐"고 했다.
류중일 "최규순 심판이 잘한 부분도 있다"
이 때 최규순 심판위원은 타임을 불러 볼데드 상황을 만든 뒤 이태원에게 주의를 줬다. 단순히 주의를 준 정도가 아니라 이태원이 자꾸 반칙행위를 하려 하는 것을 붙잡아 저지시킨 뒤 친절하게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심판이 정해진 규정에 따라 판정을 하면 되지 야구교실을 하듯 지나치게 개입해 상대적으로 삼성이 불리하게 만든 게 아니냐"며 발끈했다.
프로야구 역사상 고의4구 때 포수가 이같은 실수를 한 적도 없거니와, 그런 선수를 심판이 붙잡아 가르쳐준 적도 없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어이없는 장면이 나와서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일단 타임을 선언했고, 이태원에게 규정을 주지시키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원칙대로 보크 판정을 내렸다가는 이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는데다, 웃음거리가 되는 프로야구를 보여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최 위원은 "기본적인 룰도 모르는 선수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마추어 지도자들도 각성해야 한다"면서도 "내가 지나치게 개입한 측면은 있는 것 같다. 팬들의 비판을 이해한다"며 수긍했다.
어찌보면 피해자였던 류중일 감독은 최 위원의 입장을 더 크게 포용했다. 류 감독은 "규정은 있지만 보통 포수로 인한 보크는 관습적으로 봐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김재걸 코치가 항의하러 나갔을 때 그냥 보고만 있었다"면서 "심판의 행위가 애매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코미디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한 의도였다면 최 위원의 행동은 적절하게 잘 대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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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채태인의 폭풍 홈쇄도 그럴 수 있다"
'채태인 충돌사건'은 3-3이던 11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일어났다. 삼성 타자 이지영이 중전 안타를 치자 2루 주자였던 채태인이 3루를 지나 홈까지 노렸다. 하지만 타구가 길지 않아 NC 백업포수 김태우는 일찌감치 공을 잡고 채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태인을 홈플레이트 앞을 가로막고 서있던 김태우를 거세게 밀고 들어갔다. 순간 김태우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야구팬들은 채태인이 어린 후배를 넘어뜨려놓고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덕아웃으로 들어갔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류 감독은 19일 경기에 앞서 김 감독을 찾아가 먼저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상대선수가 넘어졌을 때는 곧바로 손이라도 잡아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채태인은 주자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플레이를 한 것이다. 채태인이 그렇게 밀고들어가지 않았다면 큰 부상을 할 수도 있었다"며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 덧붙여 김 감독은 "우리 포수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정면 충돌을 했는데 옆으로 살짝 비키면서 태그만 하는 요령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김 감독님의 말씀이 백번 맞다. 상대선수를 넘어뜨렸을 때 어깨라도 툭 쳐주는 미덕이 필요하다"며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김 감독이 고맙다"고 화답했다. 채태인도 모른 척 한 게 아니었다. 채태인은 18일 밤에 김태우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전했고, 이날 경기를 앞두고 자신의 새 방망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자칫 깊어질 수 있었던 사건의 후유증은 그렇게 사라졌다.
창원=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