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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같은 백업' 정형식을 이끄는 긍정의 힘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3-05-19 16:11


롯데와 삼성의 2013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9회초 삼성 정형식이 파울타구를 날리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3.14/

유행같은 예비역 선수들의 활약. 우연이 아니다.

"군대 갔다 오기 전에는 오늘 무안타 치면 그냥 '내일 경기 못 뛰겠구나'하는 생각만 했어요. 지금이요? 안타 1개도 못치면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에요." 두산 테이블세터로 맹활약 중인 예비역 외야수 민병헌의 증언이다.

환경 변화에 대한 마음가짐의 작은 차이. 큰 결과 차이를 부른다. 병역 의무는 미필 선수들에게 큰 딜레마다. 어느 시점에 갈 것이냐,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각 팀 백업으로 뛰고 있는 미필 선수들에게는 희망 없는 현실의 도피처 같은 역할도 한다. '군대나 갔다올까?' 이런 생각 한번쯤 안 해본 백업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다. 미필 백업 선수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이유. 절실함의 차이를 부르는 환경적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기 드문 별종도 있다. 가깝든 멀든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미필 선수. 삼성 외야수 정형식(22)이다. 백업 출신 이 선수, 좀 특이하다. 떨만한 상황인데 떨지 않는다. 히트앤드런 등 부담스러운 작전이 걸려도 척척 수행해낸다. 중요한 찬스 상황에서 어김 없이 득점타를 날린다. 18일 창원 NC전 연장 승부에서 동점 타점과 결승 타점을 모두 기록했다. 18일 현재 시즌 타율이 0.250안데 득점권 타율은 무려 0.450.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 실전 경험이 부족한 백업 선수들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순간이 바로 압박감이 큰 찬스 상황임을 감안하면 독특한 선수임이 틀림 없다.

위축될만한 상황에서 오히려 적극적이다. 지난 시즌 '왼손 투수에 약하다'는 세간의 평가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전략을 들고 나왔다. "왼손에 약하다는 말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부담을 느끼니까 먼저 뛰고보자는 생각에 툭 건드리고 나도 모르게 몸이 빠지면서 피해가는 타격을 했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오른손이나 왼손이나 그냥 똑같이 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치려 노력중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 마인드는 타격 메커니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몸쪽 공에 강한 비결'을 묻자 그는 "코스를 노리는 건 아니고요. 다만 직구를 노리고 있다보니 몸쪽 공에 반사적으로 배트가 빠르게 나오는 것 뿐입니다"라며 웃는다. '못 치면 어떻게 하나' 부정적 생각에 마비돼 잔뜩 굳어 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반응.

수비와 주루는 그의 전공 분야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외야 커버 범위가 광활하다. 인터뷰 중 옆을 지나가던 선배 오승환이 "형식이 수비요? 최고죠. 투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외야수에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어지간한 2루타에도 1루에서 홈을 파고 들 수 있는 폭발적인 가속력도 정형식만의 큰 장점. 올시즌 향상된 타격 솜씨를 자랑하며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완전체 외야수를 향해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만만치 않다. 어찌보면 시한부 주전이다. 손목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빠져 있는 베테랑 우익수 박한이의 컴백이 임박했다. '주전같은 백업' 정형식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비집고 들어갈 데 없는 최강 외야진을 자랑하는 삼성이란 팀은 어쩌면 절망적인 환경이다. 외야가 약한 팀에 가면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실력의 외야수. 억울한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그는 마인드도 특이했다. 인터뷰 때 보여주는 초롱한 눈빛과 밝은 안색만큼 놀랍도록 긍정적이다. "시합을 못 나가도 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팀 분위기가 좋으니까 작전 수행도 그렇고 오히려 부담 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바꿀 수 없는 환경. 불평만 잔뜩 늘어놓은 채 손을 놓아 버리는 자와 최대한 긍정적인 면을 찾아 매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 어느 선수의 미래가 더 밝을까. 베테랑 박한이 조차 긴장하게끔 만드는 정형식의 놀라운 활약의 이면에는 스물둘 청년이 내뿜고 있는 놀랄만한 긍정의 힘이 있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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