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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또 한 번 진화했다. 땅볼 유도형 투수로 깜짝 변신했다.
특히 류현진은 처음으로 11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빅리그 데뷔 후 최다 투구수를 기록했다. 무려 114개의 공을 던졌다. 5안타(1홈런 포함) 3볼넷을 허용했지만, 삼진 3개를 잡아내며 1점만 내줬다.
류현진은 데뷔 후 8경기 연속 6이닝을 넘게 투구했다. 다저스 역사상 신인투수가 8경기 연속 6이닝을 소화한 건 세번째. 루키답지 않은 이닝소화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 류현진의 호투의 비결은 평소와 달랐다. 이날 탈삼진 수는 3개. 한국 프로야구에서 '닥터 K'의 면모를 보였던 그답지 않은 기록이다. 지난 5일 샌프란시스코전(2개)에 이어 두번째로 적은 탈삼진을 기록했다. 당시에는 6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는데, 이번에는 탈삼진이 적었는데도 호투를 펼치며 연패를 끊었다.
사실 류현진은 '삼진형 투수'다.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이용하는 과감한 코너워크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고, 서클체인지업 혹은 직구로 삼진을 잡는 장면이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땅볼/뜬공 비율이 13.00(MLB.com 기준)에 이르렀다. 13-1로 땅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날 경기 전까진 땅볼/뜬공 비율이 1.00으로 정확히 일치했다.
류현진은 이날 총 20개의 아웃카운트 중 삼진으로 3개, 땅볼로 13개, 뜬공으로 3개를 잡아냈고, 병살타로 1개를 추가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는 팝플라이나 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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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류현진은 변신했다.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변종 패스트볼(투심 패스트볼, 싱커 등)을 구사하지 않음에도 이런 비율이 나온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보통의 '땅볼 유도형 투수'들은 변종 직구가 주무기인 경우가 많다. 갑작스런 변화로 타자의 배트 중심을 비켜가는 공이야 말로, 땅볼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류현진은 변종 직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포심 패스트볼을 바탕으로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 '전형적인' 투수다. 게다가 체인지업과 커브의 경우,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데 최적화된 공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뜬공 투수'로 보는 게 맞다.
갑작스런 변신, 스트라이크존 변화에 대한 적응이었다
류현진의 갑작스런 변신, 그 이유는 뭘까. 이날 구심이었던 론 쿨파는 몸쪽 공에 유난히 박했다. 2회 미구엘 올리보에게 볼넷을 내주는 과정에서 이날 최고구속이었던 94마일(약 151㎞)짜리 직구가 볼 판정을 받았다. 몸쪽 꽉 찬 공이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국내에 비해 몸쪽 스트라이크존이 좁다. 여기에 심판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 경기 초반부터 주전포수인 A.J.엘리스는 이런 심판 성향을 간파하고, 몸쪽 공을 유도하지 않았다. 바깥쪽 일변도의 리드가 나온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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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바깥쪽 공에도 후하지 않았다. 존이 다소 타이트했다. 그래도 류현진은 직구의 위력으로 버텨냈다. 이날 114개 중 66개의 공이 직구로 직구 비율이 57.9%에 이르렀다. 또한 땅볼로 잡은 아웃카운트 13개 중 직구로 잡아낸 게 6개나 됐다. 체인지업이 5개, 슬라이더가 2개였다.
4회 선두타자 플라시도 폴랑코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 실점 없이 이닝을 마치는 과정이 이날의 투구 패턴을 정확히 보여줬다. 다음 타자 저스틴 루치아노에게 직구만 4개를 연달아 던진 뒤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3루수 앞 땅볼을 유도했다.
이어진 1사 3루. 마르셀 오즈나를 삼진으로 돌려세울 땐 파울로 4개의 공을 커트당한 뒤 8구째 바깥쪽 높은 직구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어서 노장 올리보에겐 스트라이크존으로 힘 있는 직구를 꽂아 넣는 자신감이 돋보였다. 3구 만에 치기 좋은 코스로 93마일(약 150㎞)짜리 직구를 던져 유격수 앞 땅볼로 요리했다.
6회에도 선두타자 폴랑코를 출루시키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루지아노와 오즈나를 유격수 앞 땅볼, 유격수 앞 병살타로 잡아냈다. 이번엔 모두 주무기인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투구수가 100개에 육박하자, 힘이 떨어진 직구 대신 체인지업으로 상대를 현혹시켰다.
진화하는 류현진, 타석에서도 소중한 세 차례의 '첫 경험'
이처럼 류현진은 경기 때마다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막혔을 때 돌아가는 법을 깨닫고 있다. 또한 짧은 시간에 변화에 적응하는 '팔색조'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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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킵 슈마커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낸 2회 첫 타석에선 1사 1,2루서 침착하게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희생번트 성공이었다. 앞서 두 차례의 시도에선 벤치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1일 콜로라도전에선 무사 1,2루서 번트를 시도했으나 상대 수비 시프트에 걸려 병살타가 됐다. 3회엔 2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데뷔 후 처음으로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것. 류현진은 1B 상황에서 파울만 4개를 쳐내며 훌륭한 '커트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1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지만 타자로서 가능성을 또 한 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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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서도 소중한 경험을 한 류현진은 7회 선두타자 올리보에게 한복판으로 체인지업을 던지다 솔로홈런을 맞고 처음이자 마지막 실점을 내줬다. MLB.com에선 올리보가 체인지업에 5할 타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력분석에 좀더 신중을 기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