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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경기 중계 이성득 위원 "롯데 때문에 위장병까지"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3-05-02 11:33 | 최종수정 2013-05-03 06:47


부산 KNN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이성득 인터뷰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5.01/

구단 직원도 아니다. 그런데 롯데가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 다음날 표정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KNN 이성득 해설위원(60). 부산-경남 지역 방송이기에 자연스럽게 롯데 위주의 중계로 많은 롯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위원이 국내 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27일 잠실 LG-롯데전 중계를 하면서 2000경기 연속 해설 기록을 세웠다. 지난 1998년 7월 11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해태와 롯데의 경기 해설을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됐다.

이 위원은 "너무 몸이 아파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롯데, 그리고 팬들이 생각나 그럴 수 없었다"며 "이제 시작이다. 3000경기 중계 목표를 채우고 싶다"고 했다. 롯데는 3일 부산 삼성전에 앞서 이 위원에게 기념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 위원은 "롯데는 나의 팀이다. 구단에서 애정을 쏟아주시는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위장병을 달고 살았죠

이 위원은 뼛 속까지 롯데맨. 82년 창단 멤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부상 때문에 1년 만에 선수생활을 접었지만 코치, 구단 프런트를 모두 거쳤다.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을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위원은 다른 해설가들과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다른 해설가들은 균형잡힌 해설을 신경써야 하지만 그는 항상 롯데를 중심으로 한 편파 해설을 한다. 부산, 경남 지역방송이기에 가능한 일이다.이 위원은 "처음 해설을 할 때는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우리 롯데'라는 얘기가 튀어나왔다"며 "지금은 나만의 스타일로 완벽히 자리를 잡았으니 만족한다. 미국 메이저리그를 봐도 각 팀을 수십년째 전담하는 해설가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례들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NC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부산-경남 방송이기에 회사에서는 이 위원에게 "롯데-NC전을 중계할 때는 공평하게 해달라"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정말 노력하는데 아직까지 듣는 사람들은 롯데쪽에 많이 쏠린 것 같다고 말하더라"며 난처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위원은 최근 몇 년 간 먹지 않았던 위장약을 다시 찾는다고 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임 전 암흑기를 겪던 롯데 야구를 보는 자체가 이 위원에게는 고통이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시절에 줄곧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이 위원의 마음을 달래줬지만 이번 시즌 초반 부진에 빠졌다. 이 위원은 "시즌 후 수십일씩 입원하는게 일상이었다. 올해는 조금 더 편하게 야구를 보려 하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부산 KNN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이성득 인터뷰
대전=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5.01/
산에 올라가 중계 들어줬던 팬들

2000경기를 연속으로 중계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이 위원은 "지금도 야구 열기가 뜨겁지만, 예전만큼 대단히 열광적인 느낌까지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마산팬들의 경우, 십수년 전만 해도 평지에서는 우리 라디오 수신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계를 듣기 위해 아예 도시락을 싸서 산 정상에 올라갔다고 하더라. 산 정상에서 단체로 함성을 지르는 팬이 많았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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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에피소드. 무더운 여름에 중계부스에서 중계를 하던 이 위원의 눈에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는 팬들이 보이더란다. 이 위원은 무심코 "나도 맥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중계부스 앞에 팬들이 보낸 캔맥주가 무더기로 쌓여있더란다.

아무래도 롯데 편을 들다보니 다른 팀들 팬의 귀에는 이 위원의 해설이 거슬릴 수가 있다. 이 위원은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게시판에 협박성 메시지를 남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이 위원은 "팬들이 있어 지금의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팬들과 함께 롯데의 우승을 한 번 더 보고싶다"고 밝혔다.

박정태-손아섭 악바리 선수들 보면 행복

선수 출신에, 롯데 코치와 프런트까지 역임해 선수를 보는 눈이 남다른 이 위원이다. 특정 팀을 위한 해설을 하는 만큼, 선수들 중에서도 더 많은 애정을 쏟는 선수가 있을지 궁금했다.

이 위원은 "나는 경남고, 고려대를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독하게 야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라운드에서 모든 혼을 불태우는 선수가 좋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경남고는 부산고와, 고려대는 연세대와 라이벌 관계였다. 자연스럽게 치열한 경쟁의식이 몸과 마음 속에 녹아들었다. 이 위원은 "지금도 누구에게 지는걸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그라운드에서 승부욕이 넘치는 선수들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90년대에는 박정태가 최고였다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박정태는 롯데의 정신적 지주로서 근성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투혼의 상징. 그렇다면 지금 롯데에서는 누가 이 위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을까. 이 위원은 "단연 손아섭이다. 야구에 대한 자세와 노력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근성의 상징인 손아섭은 2007년 입단 후 넘치는 열정으로 주전 우익수로 성장했고, 이대호(오릭스) 홍성흔(두산) 김주찬(KIA)이 빠져나간 롯데에서 간판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선수들도 이 위원을 보통의 해설가로 대하지 않는다. 항상 피와 살이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자신들을 챙기는 이 위원은 그들에게 야구 선배이자, 자상한 아버지와 같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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