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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새 무기 슬라이더, 뒤늦은 재발견 왜?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04-26 06:21



그동안 감추던 무기, 생갭다 위력적이다.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밋밋하지 않았다. 초구부터 적극적인 승부를 펼친 것도 주효했다.

'LA몬스터' 류현진의 서드피치(Third Pitch)가 드디어 본색을 보이고 있다. 슬라이더의 비율을 점점 높여가며, 효율적인 승부를 가져가고 있다. 슬라이더가 자리를 잡으면서 볼배합에 한층 짜임새를 더했다. 여기에 적극적인 초구 스트라이크까지. 그야말로 영리한 피칭이었다.

26일(이하 한국시각)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 LA다저스의 류현진은 선발등판해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7회까지 투구수는 109개. 탈삼진은 8개를 잡아냈다. 3안타 3볼넷을 허용하며 1실점, 아쉽게도 1-1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신 평균자책점은 4.01에서 3.41까지 낮췄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최다 이닝, 최다 투구다. 기존엔 6⅓이닝(3일 샌프란시스코전, 8일 피츠버그전)이 최다이닝이었고, 14일 애리조나전의 107개가 최다 투구수였다. 다섯번째 선발등판에서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처음으로 7이닝을 소화하면서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아이크 데이비스 지독하게 괴롭힌 슬라이더, 짜증낼 만 했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 초반에 직구 위주의 피칭을 이어갔다. 직구로 컨트롤을 잡아가는 모습이었다. 변화구를 간간이 섞긴 했지만, 주무기는 직구였다. 특히 1회말 메츠를 대표하는 타자 데이빗 라이트에게 직구만 4개 던져 스탠딩 삼진을 잡아내는 장면이 백미였다. 바깥쪽 직구에 꼼짝 못하고 당했다.

처음엔 직구가 기본이었지만, 타순이 한 바퀴를 돈 뒤에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우타자 상대로는 체인지업, 좌타자 상대로는 슬라이더가 결정구였다. 이날 직구도 좋았지만 슬라이더도 돋보였다. 서클체인지업이야 류현진이 전매특허라 치더라도, 슬라이더는 국내에서도 정상급이 아니라고 평가받던 공이다.


'코리안몬스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3연속 퀄리티 피칭을 선보이며 호투를 펼쳤다. LA다저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D-백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로 출전 했다. 6이닝을 투구하며 6안타 9삼진을 기록하는 호투를 펼쳤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투구를 펼치고 있는 류현진.
피닉스(미국 애리조나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4.14
특히 좌타자 아이크 데이비스는 지독하리만큼 슬라이더로 공략했다. 2회 바깥쪽 슬라이더에 어정쩡한 체크 스윙으로 투수 땅볼 아웃됐던 데이비스는 5회엔 슬라이더에 삼진을 당했다. 슬라이더 2개로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바깥쪽 공 3개가 모두 볼 판정을 받았다. 풀카운트 승부, 류현진은 다시 한 번 슬라이더를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어정쩡한 헛스윙이 나오며 삼진.


6회 1실점한 뒤 계속된 2사 1,3루서 만난 데이비스. 류현진은 또다시 슬라이더만 연달아 3개를 던져 볼카운트 1B2S를 만들었다. 다음 공은 '역'으로 갔다. 바깥쪽으로 92마일(148㎞)짜리 직구를 꽂았다. 이날 최고구속. 데이비스는 파울팁 삼진을 당한 뒤 방망이를 덕아웃 쪽으로 집어 던졌다. 류현진에게 완벽히 농락당한 데이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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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슬라이더, 왜 감춰져 있었나?

류현진은 그동안 슬라이더를 꽁꽁 감추고 있었다. 이유는 뭘까. 다저스는 류현진 영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현진의 슬라이더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단독으로 결정구가 되긴 어려워도, 다른 공과 함께 쓰인다면 충분히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류현진은 국내에서부터 스프링캠프 땐 슬라이더를 꺼내지 않았다. 데뷔 후 계속 같은 패턴이었다. 정규시즌 개막을 2주 가량 앞두고 던지기 시작하는 정도였다. 국내로 치면, 시범경기 막판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생갭다 빨리 슬라이더를 꺼냈다. '통할까?'라는 생각이 앞서 테스트 차원에서 던진 공이었다. 지난달 2일 LA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였다. 처음 던진 슬라이더, 류현진은 그 공으로 조시 해밀턴에게 홈런포를 얻어맞았다.


'코리안몬스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3연속 퀄리티 피칭을 선보이며 시즌 2승을 챙겼다. LA다저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 했다. 류현진은 6이닝 6안타 9삼진 3실점 했으며, 타석에서도 3타수 3안타를 선보이는 맹활약 끝에 승리 투수가 됐다. 힘차게 투구하고 있는 류현진.
피닉스(미국 애리조나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4.14
류현진은 그동안 커브를 좀더 많이 사용하면서 슬라이더를 감춰왔다. 정규시즌이 시작된 뒤, 슬라이더 비율이 높아졌다. 그동안 조용히 가다듬어온 만큼, 좋은 서드피치가 됐다.

스프링캠프 때 만난 류현진은 "슬라이더는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구종이다. 예전에 수술을 받아서인지 그동안 슬라이더는 가장 마지막에 던지는 공이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받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 탓에 슬라이더가 봉인돼 있던 것. 류현진은 매년 몸을 충분히 만든 다음에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게 그만의 '루틴'이다. 자신의 팔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초구 스트라이크, 기선제압의 표본

류현진은 이날 공격적인 피칭도 선보였다. 바로 '초구 스트라이크'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공을 던졌다. 카운트를 잡으려 들어간 쉬운 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이 있었다.

류현진은 지난 21일 볼티모어전에선 초구 때문에 고전한 바 있다. 볼티모어 타선은 류현진의 앞선 세 차례의 등판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나왔다.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간 공을 손쉽게 쳐냈다.

그날의 교훈이 약이 됐을까. 이날 만큼은 초구가 무기였다. 총 27타자 중 20차례나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초구 스트라이크의 비율이 무려 74%나 됐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패턴도 눈에 띄었다. 상대를 유린하는 볼배합이었다. 초반엔 주로 직구로 카운트를 잡았다. 반면 한 바퀴를 돈 뒤엔, 상대가 직구를 노릴 것을 감안해 초구로 변화구를 선택했다.

말로 설명하면 쉬워 보이지만,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영리한 볼배합이었다. 좋아진 슬라이더를 기반으로 훌륭한 패턴을 만들었다. 적극적인 피칭까지 이어지니 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즌 3승에는 실패했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한 류현진을 발견한 경기였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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