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류제국. 아직은 이름 앞에 붙는 'LG'라는 팀명이 낯설다. 하지만 조만간 그가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는 날이 올 것이고, 팬들에게 승리를 선사한다면 류제국은 확실한 'LG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LG 입단 과정에서 있었던 구단과의 불혐화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속시원히 밝혀야 팬들도, 그리고 선수 본인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류제국과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수 차례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1군 선수단에 합류한 24일 밤 어렵게 전화통화가 닿았다. 이날 잠실구장에서 하지 못했던 속얘기들을 꺼내놓으며 올시즌 활약을 다짐했다.
류제국은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난은 괜찮았지만 한국에서 언론보도를 매일 접하는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상상이상이었다고. 류제국은 "가족들이 나를 위해 티를 안내려는 모습 때문에 더더욱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류제국은 "백순길 단장님께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단장님은 협상을 마무리짓고 가는게 어떻겠느냐며 반대하셨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정했던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강행했다"며 소리소문 없이 한국을 떠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단, "구단이 반대한 일정을 내가 무리하게 추진했기에 구단 역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큰 오해가 생기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미국팀 입단추진설에 대해서는 "만약, LG 말고 다른 팀을 가려했다면 한국에서 더욱 확실히 몸을 만들고 나갔을 것"이라며 "이번 시즌 LG에서 공을 던지기 위해 익숙한 곳에서 순수하게 몸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돈 때문에 미국에 갔다는 억측이 가장 억울했다. 정말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자신할 수 있나"라고 다시 한 번 묻자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다.
"팬들에게 사죄하는 방법? 야구 잘하는 것 뿐."
당초 빨라야 6월 1군 무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그 시기가 많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류제국이 몸상태를 많이 끌어올렸다는 뜻. 류제국은 "자부할 수 있는건 2군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류제국이 처음 2군에 합류했을 때 노찬엽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코칭스태프가 특급 도우미로 변신했다고 한다.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는 류제국에게 기술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직구구속이 145㎞를 훌쩍 뛰어넘었고, 살도 눈에 띄게 빠진 모습이었다.
류제국은 "현재 몸상태는 80~90%까지 끌어올렸다"며 "마지막 숙제가 있다면 이닝을 시작할 때 조금씩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부분이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군 경기 2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느낀 점이다.
그는 직접 겪은 한국야구는 어땠을까. 류제국은 "미국과 수준 차이는 거의 없다. 공을 보는 부분은 한국타자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며 "한국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스트라이크존에 최대한 많은 공을 꽂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구수 조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제국은 "굳이 따지자면 내 투구는 아직 미국식"이라며 "외국인 투수들이 한국무대 데뷔 후 겪는 어려움을 나도 겪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분석했다.
"그동안 해외에서 복귀한 투수들 중 첫 해 한국무대에 연착륙한 사례가 거의 없다. 내가 그 첫 번째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류제국은 "팬들께 사죄하고픈 마음 뿐이다. 다른건 필요없다. 결국 야구를 잘해야 한다. 내가 팀에 보탬이 돼 LG가 4강에 진출할 수 있다면 팬들도 조금은 용서를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우야, 멋지게 한판 붙어보자."
류제국에게 "'영혼의 라이벌'의 활약은 지켜보고 있는가"라고 묻자 곧바로 "진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류제국과 KIA 김진우는 83년생 동갑내기. 각각 덕수고와 광주진흥고의 간판으로 '초고교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고교무대를 호령했다.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이 3학년이던 2001년 김진우가 팀을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자, 류제국은 청룡기 결승전에서 김진우의 광주진흥고를 무너뜨리며 설욕에 성공했다. 류제국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보다 한 수 위였다. 훨씬 안정적이었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해외진출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고교 졸업 후 두 사람의 운명은 갈렸다. 류제국은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고, 김진우의 선택은 고향팀 KIA였다.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 사람이 이제는 고교무대가 아닌 프로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칠날이 멀지 않았다. 류제국은 "진우와의 맞대결이라. 조심스럽다. 하지만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보다 팀수가 적어 로테이션이 겹칠 확률도 훨씬 높다"며 김진우와의 맞대결이 싫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경기장에서도 김진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무심코 "진우만큼은 해야죠"라는 답을 하고 만 류제국이다.
그동안 한국프로야구에는 선동열(현 KIA 감독)과 고 최동원 이후 확실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우완 정통파간의 라이벌 구도가 없었던 것도 사실. 물론 류제국이 정상적인 컨디션을 보여 선발 로테이션에 연착륙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만약 류제국과 김진우의 매치가 성사된다면 팬들로서는 두 사람의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꽤나 흥미롭지 않을까.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