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NC전을 앞두고 대전구장 1루쪽 한화 코치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김응용 감독이 말없이 TV 바둑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코치 몇몇이 오고갔지만 편하게 말을 붙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날 김 감독은 경기 전에 덕아웃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홈팀 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오후 5시쯤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인사차 1루쪽 덕아웃을 찾았을 때도 김성한 수석코치가 맞았다. 농구패션에 머리를 바짝 자른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김 감독이 누구인가. 2004년 시즌이 끝나고 삼성 라이온즈 지휘봉을 놓았을 때까지 통산 1476승을 거둔, 한국 프로야구 역대 감독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지도자가 아니던가. 또 한국시리즈에서 10번이나 우승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9년 만에 돌아온 현장, 한화에서 김 감독은 더이상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는 "야구를 오랫동안 했지만 1승이 이렇게 어렵다는 걸 몰랐다. 우린 지금 1승이 급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16일 맞은 상대가 신생팀 NC다. 나란히 연패를 하다가 먼저 시즌 첫 승을 거둔 것도 NC였다. NC는 지난 주말 SK전서 연승까지 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승이 급한 한화에게 막내 NC조차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김 감독은 경기 전에 "초반만 잘 넘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한화는 1회에만 3점을 내줬다. 0-1으로 뒤진 1회초 2사 2루에서 좌익수 정현석이 NC 5번 권희동의 플라이 타구를 놓치면서 분위기는 NC쪽으로 흘러갔다. 그동안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았던 실책이 터져 나온 것이다. 올시즌 주로 중견수로 나섰던 정현석의 수비가 불안하다며 이날 처음 좌익수로 출전시킨 김 감독이다. 김 감독의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3-4로 끌려가던 한화는 5회말 김태균이 시즌 1호 좌월 2점 홈런을 터트려 5-4로 역전에 성공했다. 올시즌 팀의 두번째 홈런이었고, 한화 선수가 기록한 대전구장 첫 홈런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박수를 치며 덕아웃의 자리를 지켰다. 불펜이 약한 한화이기에 중반 1점차 리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계투와 마무리의 경계가 사라진 한화다. 이날 한화의 외국인 선발 바티스타는 초반 흔들리다가 3회부터 비교적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 3회부터 5회까지 3이닝 동안 삼진을 7개나 잡을 정도로 구위가 위력적이었다. 한화로선 최대한 바티스타로 끌고 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티스타도 투구수가 100개를 넘기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바티스타는 6회초 2사 만루에서 116개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 방이면 다시 전세가 역전되는 2사 만루에서 김 감독은 또 얼마나 애가 탔을까.
9회초 2사 1루. 한화 두번째 투수 송창식이 NC 2번 차화준을 삼진으로 잡으면서 김 감독의 길고 긴 하루는 끝났다. 6대4 승리, 시즌 첫 승. 김 감독 야구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가 아니었을까. 김 감독은 승리가 확정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덕아웃을 빠져 나갔다. 코치들과 악수도 하지 않고.
삼성 감독으로 있던 2004년 10월 4일 대구 두산전에서 통산 1476번째 승리를 기록한 후 다시 맛본 승리다. 6524명의 팬들이 한화의 시즌 첫 승과 72세 노 감독의 통산 1477번째 승리를 지켜봤다.
김 감독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울었느냐'고 묻자 "울만 했죠"라고 했다. 관중들은 TV 인터뷰를 위해 덕아웃 앞으로 나온 김 감독을 향해 "울지마, 울지마"를 외쳤다. 그의 눈가에는 살짝 물기가 어렸다.
김 감독은 "개막전 때 마무리에 실패한 후 경기가 꼬였다. 어이없는 플레이가 속출했고, 오늘도 그랬다. 오늘은 그래도 따라가서 이길 수 있었다. 우리 팬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이제 14경기가 지났고, 114경기가 남았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