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살아난 직구 구위, 공인구 적응도 OK!
개막을 2주 가량 앞두고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던 평범한 직구는 슬슬 구위가 살아나고 있다. 이런 페이스로 구위를 끌어올리고, 원하는 곳에 공을 넣을 수 있는 제구력이 계속해서 뒷받침된다면, 스피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진을 잡는 패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바깥쪽' 직구였다. 바깥쪽 꽉 찬 직구 혹은 높은 직구로 상대 타선을 유린했다. 스트라이크존 구석에 공을 넣는 능력, 메이저리그에서 '패스트볼 커맨드'로 통용되는 능력을 한껏 발산했다. 그리고 제대로 맞은 장타도 없을 정도로 직구에 힘이 있었다.
여기에 '서드 피치(Third Pitch)' 커브 역시 빛을 발했다. 커브 구사가 마음대로 되면서 맞혀 잡는 피칭까지 됐다. 직구-서클체인지업의 단순한 패턴으론 성공할 수 없기에 3,4번째 구종의 업그레이드는 필수적이다. 류현진은 땅볼로 잡은 아웃카운트 5개 중 4개를 변화구로 잡았다. 주무기인 서클체인지업은 말할 것도 없었고, 커브를 적절하게 섞었다.
그동안 류현진은 국내와 달리 미끄러운 메이저리그 공인구 적응에 애를 먹었다. 중지와 검지를 이용해야 하는 커브 그립의 특성상 공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날 자유자재로 커브를 구사하며 공인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하지만 3회까지 투구수가 60개나 된 건 분명 문제였다. 1회 실점은 그렇다 쳐도 3회 연속 볼넷을 내주며 실점하는 과정이 좋지 않았다. 두 타자 모두 투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놓고도 유리한 볼카운트를 살리지 못했다.
류현진은 3회 1번타자 카를로스 고메즈를 다시 선두타자로 맞이했다. 1회 좌전안타로 선취점의 빌미를 내줬기에 삼진으로 잡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볼카운트 1B2S. 류현진은 몸쪽 꽉 찬 공을 던졌다. 이날 가장 자신 있게 던진 직구였다. 고메즈는 가만히 서서 몸쪽 공을 흘려보냈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날 구심인 마이크 디무로의 손은 결국 올라가지 않았다. 볼이었다.
류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내프로야구였다면, 호쾌한 스트라이크 선언과 함께 심판의 멋진 액션이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몸쪽 공에 박한 스트라이크존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다음 타자 머피는 첫 타석에서 주무기인 서클체인지업을 이용해 삼진으로 돌려세운 상대였다. 하지만 0B2S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지키지 못하고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앞선 심판의 스트라이크콜이 영향을 미쳤다. 류현진은 "아~"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TV 중계에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다행히 이날 호흡을 맞춘 주전포수 A.J.엘리스가 마운드에 올라 류현진을 안정시켰다. 이후엔 11타자 연속 범타. 이날 좋았던 직구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바깥쪽 승부를 펼쳤다. 정교한 제구력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피칭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류현진은 낯선 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해야 한다. 물론 이날도 금세 바깥쪽으로 패턴을 바꾸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몸쪽 공에 대한 콜이 안 나왔을 때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23일 추신수가 있는 신시태니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시간 애리조나에서 등판한 노장 테드 릴리가 2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면서 선발등판 확률이 높아졌다. 한편, 추신수는 이날 클리블랜드와의 시범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허리 통증으로 2경기 연속 벤치를 지켰다. 두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첫번째 맞대결이 성사될 지도 주목된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