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업그레이드 나지완, 상식의 허를 찌르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3-03-19 10:12


10일 광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시범경기 한화와 기아의 경기가 열렸다. 5회말 2사 기아 나지완이 좌익수 뜬공을 치고 1루로 달려나가고 있다.
광주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3.03.10/

'상식'은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그렇다'라고 인정하는 것들을 끌어모아 '상식'이라는 범주에 묶어놓는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한 '상식'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니다. '콜럼부스의 달걀'과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 개념들은 대부분 상식의 틀을 깨고, 그 범주를 뛰어넘은 데서 탄생했다. 역사적으로 대다수가 "예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과감히 말했던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 분야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경쟁 상대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자기개발을 시도하는 프로야구에서는 '상식의 파괴현상'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 가까운 예로 KIA 나지완을 들 수 있다. 나지완은 지금 상식의 허를 찌르고 있다. 체중을 줄이면 힘도 따라 줄어든다는 상식, 그리고 힘이 줄어들면 따라서 장타력도 감퇴될 것이라는 바로 그 상식. 나지완이 그 상식에 도전하고 있다.

체중은 줄었어도 타구는 멀리 나간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베이브 루스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홈런을 많이 치려면 체중이 많이 나가야 한다고 여기게 됐다. 이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체중이 무거우면 그만큼 근육량이 많아 상대적으로 훨씬 큰 힘을 쓸 수 있고, 힘을 남보다 많이 쓸 수 있는 타자라면 타구를 한층 더 멀리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견 맞는 생각이다. 실제로 몸집이 크고, 일반인에 비하면 비만 체형인 타자들이 홈런 등의 장타 많이 치는 경우가 잦았다. 메이저리그 보스턴의 데이빗 오티스나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점왕을 차지한 오릭스의 이대호,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의 김태균 최준석과 같은 선수들은 세 자릿수나 그에 준하는 몸무게를 지녔다. 프로 스포츠 선수임에도 불룩하게 배가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선수들을 보며 장타력을 지니려면 일단은 체중이 많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결론이 100% 정답은 아니다. 상식의 범주에 넣기도 애매하다. 홈런과 같은 장타는 단순히 체중과 근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육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시아홈런 신기록을 세운 삼성 이승엽이다. 건장한 체형의 이승엽이 대기록을 세울 수 있던 비결은 체중에서 뿜어나오는 힘이 아니었다. 비결은 남보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강한 손목, 배트가 공과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힘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임팩트 능력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상대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도 있었다.


올해 나지완은 바로 이러한 이승엽과 같은 유형의 타자로 변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는 곧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더 많은 장타를 날릴 수 있다"는 상식을 파괴하는 작업이다. 스스로를 개혁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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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나지완은 퉁퉁했다. 몸무게도 세 자릿수였다. 몸매로 굳이 구분을 하자면 '이대호 스타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한눈에 봐도 몸매가 슬림해졌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를 거치며 엄격한 자기관리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덕분이다. 선동열 감독이 주문한 것도 있지만, 스스로의 의지도 뜨거웠다. 군 입대를 1년 미룬만큼 올 시즌에 제대로 승부를 걸어보기 위해서다. 나지완은 "13㎏를 뺐다. 지금은 '두 자릿수' 몸무게"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몸무게를 크게 줄이면 힘이 줄어들 지는 않았을까. 나지완의 감량에 대해 장타력 저하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나지완은 단호하게 말했다.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트레이닝 코치진의 도움을 받아 식이요법으로 불필요한 체지방을 줄이고, 효과적인 운동을 통해 오히려 근육량은 늘어났다"며 파워의 저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았다. 슬림한 몸매로 라인드라이브성 홈런을 날리는 '이승엽 스타일'에 가까워진 것이다.

페이스 다운을 위해 배트 무게를 역으로 늘렸다

나지완이 체중 감량에도 불구하고 장타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또 있다. 근육량의 증가와 함께 몸이 가벼워진 덕분에 한층 간결하고, 빠르며 힘이 실린 스윙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이는 김용달 타격코치의 도움이 컸다. 캠프를 통해 나지완은 타격 폼을 약간 수정했다. 하체의 힘을 이용하는 한편 보다 효과적으로 타구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타격 준비자세에서 오른 팔꿈치의 각도를 높였다.

이렇게 되면 타격 시 보다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준비자세에서 약 90도 정도로 든 오른 팔을 타격 때 순간적으로 옆구리 쪽으로 붙여 나오면서 스윙이 간결하면서도 강해진다. 이승엽이나 김태균이 이런 식의 타격을 한다. 나지완은 "김태균 선배가 하는 것처럼 오른 팔을 몸쪽으로 붙이며 나오면서 밀어치는 타구에도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김 코치의 조언 덕분이다.

더불어 나지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프링캠프 기간에 일부러 무거운 배트를 들고 나온다. 정규시즌 때 나지완은 보통 920g짜리 방망이를 들고 나오는데, 시범경기 때 쓰는 배트는 960g짜리다. 매우 무거운 배트라고 볼 수 있다. 타자들은 불과 10g의 배트 무게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평소 늘 사용하는 배트 무게가 정해져 있다. 배트 무게를 한 번에 40g씩 늘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또한 타자들의 상식에서는 벗어난다.

그런데 왜 나지완은 상식을 거부하고 방망이 무게를 오히려 크게 늘렸을까. 일단 이런 방망이를 가지고도 정상적인 스윙을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체중이 줄었어도 힘은 그대로라는 게 여기에서 입증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시범경기에 무거운 배트를 쓰면서 페이스를 일부러 낮추기 위해서다.

나지완은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920g 짜리로 바꾸겠지만, 시범경기에서는 960g 배트를 쓰겠다. 이 배트를 쓰는 이유는 페이스를 자연스럽게 떨어트리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시범경기에서 타자들의 타격감이 너무 좋으면 정규시즌 초반에 역으로 부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나지완도 이런 케이스를 경계한 것이다.

체중 감량으로 몸이 가벼워진 덕분에 나지완은 스프링캠프에서 페이스가 좋았다. 부상도 없었다. 이로 인해 페이스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나지완은 이러면 오히려 정규시즌에 부진할 수 있다고 우려해 콘트롤이 힘든 무거운 배트를 든 것이다. 다소 힘들겠지만, 정규시즌을 위해서는 오히려 그 편이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상식의 틀을 거부한 나지완이 올해 대형 타자의 본색을 보여줄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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