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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5.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패배다. 한국 WBC 대표팀이 예선 1라운드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완패했다. 일본에서 치러지는 2라운드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연, 우리 대표팀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걸까, 아니면 네덜란드 대표팀의 전력을 우리가 얕봤다가 큰코 다친 것일까. 아쉬움이 남는 첫 경기를 돌이켜보자.
먼저, 1회초 한국 대표팀의 공격. 한국은 정근우, 이용규, 김태균이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세 타자가 친 타구가 모두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대로 네덜란드 선두타자 시몬스는 한국 대표팀의 실책으로 무사 2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유격수 땅볼. 하지만 유격수 강정호가 1루수 이대호를 향해 원바운드 송구를 했고, 이대호가 이를 잡지 못해 공이 뒤로 빠졌다. 날씨가 문제라는 얘기가 나왔다. 경기 전 비가 많이 내려 그라운드가 흥건히 젖었고, 강정호가 송구를 할 때 미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1회초 안정적인 내야수비를 선보인 네덜란드 내야진과 비교하면 이는 핑계일 뿐이었다. 대표팀 경력이 많지 않은 강정호가 전국민의 관심이 모아진 첫 경기, 첫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낀 부담으로 설명하는게 더 옳았다. 결국, 부담감은 베테랑 정근우에게까지 이어졌고, 정근우 역시 1사 2루의 위기 상황에서 베르나디의 평범한 2루 땅볼 때 송구 실책을 저지르며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투수 노경은의 부진도 뼈아팠다. 지난해 위력적인 구위로 12승을 올려 생애 처음 대표팀에 선발된 노경은은 연습과정에서 최고의 구위를 자랑하며 대표팀의 히든카드로 급부상했다. 네덜란드전 역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0-1로 뒤지던 5회 1사 1루 상황서 윤석민을 구원등판한 노경은은 안타 2개와 볼넷 1개를 내주며 네덜란드 대표팀에 2점을 더 헌납했다. 구위는 괜찮았지만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국내 프로경기에서와는 달리 도망가는 피칭이 눈에 보였다.
야구 변방이던 네덜란드, 생갭다 강했다.
우리가 만년 약체로 분류됐던 네덜란드 대표팀의 전력을 너무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한국 대표팀은 네덜란드전에 에이스 윤석민을 내세웠다. 그만큼 경계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보였던 아쉬움은 쉽게 지울 수 없다.
네덜란드는 세계 야구의 변방이었다. 지금까지 대표팀간의 경기 전적도 우리가 압도했다. 하지만 이번 WBC에 참가한 네덜란드 대표팀은 달랐다. 단순히 운이 좋아, 한국전 당일 컨디션이 좋아 괜찮은 경기력을 뽐낸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여졌다.
타선은 어느정도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운드도 예상 밖이었다. 선발 마르크벌은 140㎞도 되지 않는 직구 구속으로 한국 타선을 요리했다. 한국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영향도 있지만 분명 홈플레이트 좌-우를 구석구석 찌르는 로케이션도 일품이었다. 이후 등장한 에인테마, 보이트도 안정적인 투구를 했다. 두 사람 역시 구위는 만만해보였다. 하지만 투구폼, 스타일이 생소해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보통 약팀들이 국제대회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은 투수들이 강팀을 상대로 제구를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등판한 네덜란드 투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신있게 한가운데로 공을 뿌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