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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한국시리즈 6차전을 마지막으로 올 시즌 프로야구의 긴 여정이 마무리 되었다.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총 관중 700만명을 돌파한 2012 팔도 프로야구는 삼성 라이온즈가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막을 내렸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3시즌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는 2000년대 후반부터 프로야구 최강자 자리를 놓고 양대산맥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올 시즌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양대산맥의 무게 중심은 완전히 삼성 라이온즈 쪽으로 쏠리게 되는 기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가 선전했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SK와이번스가 보여줬던 야구를 생각한다면 차마 그런 말은 입밖에도 올리지 못할 것이다. 와이번스는 올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전혀 와이번스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말았다.
와이번스 답지 못하고 이제 와이번스에게서 불과 몇 년전에 리그를 호령하던 모습을 기대할 수 없음을 입증했던 한국시리즈 5차전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되새겨 본다.
와이번스는 1회말 수비 때 2사 2,3루 상황에서 5번 타자 박한이 타석에서 선발투수 윤희상의 결정적인 폭투로 1점을 헌납하였다. 하지만 바로 이전 타자 최형우와의 승부 때 높은 직구의 위력으로 범타를 이끌어냈고, 경기가 1회였음을 감안했다면 포수 조인성은 투수 윤희상의 직구에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 조인성은 지나치게 박한이의 컨디션을 의식하였다. 박한이는 시종일관 적극적인 타격자세로 상대 배터리를 압박했고, 결국 상대의 자멸을 이끌어냈다. 비록 박한이가 높은 직구에 강하다고 하지만 윤희상의 공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변화구가 제구되지 않는 점을 감안했다면 조인성은 윤희상이 더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을 주문했어야 했다. 폭투가 발생한 다음의 화면에 비춰진 윤희상의 표정은 무언가를 상당히 원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3회말 수비에서도 와이번스는 1사 1루에서 최형우의 우전안타 때 우익수 임훈의 이해할 수 없는 수비자세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였다. 임훈은 타구를 잡고 바로 송구동작을 준비하려다가 볼을 펌블했고, 이 상황을 놓치지 않은 1루주자 이승엽은 3루까지 진루하였다. 타구가 느린 편이 아니었고, 1루 주자 이승엽이 주루 센스는 있더라도 그리 빠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훈은 우선 안전하게 볼을 포구할 생겄터 해야 했다. 지나친 후속동작에 대한 신경이 결국 집중력을 흐트리는 자충수가 되었다.
5번 타자 박한이의 타구에서 더욱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 앞으로 가는 평범한 땅볼이었고, 홈으로 돌진하던 3루 주자 이승엽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진만은 베테랑 답지 않게 공을 바로 글러브에서 꺼내지 못하면서 결국 3루로 공을 뿌리지 못하였다. 정규시즌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황당한 장면이었다. 박진만의 멍청한 수비는 와이번스의 김을 빼놓기에 충분하였다.
한국시리즈 3차전 승리의 숨은 주역이었던 박진만은 5차전에서는 팀 패배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는 멍청한 플레이를 수비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선보였다. 7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등장한 박진만은 라이온즈 구원투수 안지만을 상대로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안지만의 제구력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박진만은 그 상황에서 몸쪽에 완전히 볼로 판정될 수 있는 볼을 스윙동작을 취하려다 건드리면서 파울로 만들어 버린다. 충분히 볼임을 직감할 수 있던 상황에서 박진만은 스스로 기회를 날려 버렸고, 결국 허무하게 삼진으로 물러난다. 이 장면이 결정적인 승부의 분수령이 되었다. 1사 만루가 되었다면 경기의 흐름은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발생한 모든 득점은 와이번스에서 비롯되었다.
2. 경기의 흐름을 망쳐놓은 이만수 감독의 작전
4회초 와이번스는 라이온즈 선발투수 윤성환의 구위에 눌리다가 선두타자 박재상부터 최정, 이호준이 3연속 안타를 터뜨리면서 1점을 만회하는데 성공하고 무사 1,2루의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한다. 타석에는 가을에 강한 남자 박정권이 타석에 들어섰다. 윤성환은 급격히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박정권이 비록 시리즈 내내 부진한 상황이었지만 찬스에 강한 면이 있고, 또한 좌타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병살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강공으로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만 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만수 감독은 박정권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하지만 이미 번트에 준비되어 있던 라이온즈 수비진은 기민하게 움직였고, 3루수 박석민은 잽싸게 3루로 송구하여 포스아웃을 이끌어냈다. 졸지에 1사 1,2루로 둔갑하면서 와이번스의 상승세는 차단되었다. 이만수 감독은 평상시에 선수들을 늘 믿는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박정권의 공격에 대한 믿음을 거두었고, 결국 이 번트 실패 하나가 경기 내내 와이번스 타자들을 위축시키게 만드는 결정타가 되었다.
3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윤성환이 흔들리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박정권에게 그대로 승부를 맡겼어야 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은 스스로 압박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7회초 무사 1,2루의 결정적 상황에서도 이만수 감독은 6번 타자 김강민에게 어설프게 버스터 작전을 지시했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삼진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였다. 4회초의 실패가 있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번트를 시켜서 주자들을 스코어링 포지션에 놓아야 했다면 처음부터 김강민에게 번트를 지시해서 성공하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부터가 흔들리다 보니 선수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덩달아 흔들거렸다.
9회초에서 와이번스는 선두타자 최정이 라이온즈 마무리 오승환으로부터 큼지막한 3루타를 터뜨리면서 경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무사 3루 상황에서 이만수 감독은 이호준을 그대로 믿고 맡겼다. 전 타석에서 2루타를 터뜨린 점을 감안하고 이호준에게 믿고 맡겼는데, 무조건 동점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만수 감독은 최소 런앤 히트 작전이라도 걸어서 동점을 노렸어야 했다. 3루주자 최정은 소극적으로 임하다가 결국 이호준의 타구 때 충분히 홈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점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2사 3루에서 이만수 감독은 박진만을 그대로 타석에 오르게 하였다. 하지만 박진만은 오승환의 직구에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다가 스탠딩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박진만의 경기 내내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타를 기용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엇박자로 헝클어진 이만수 감독의 경기를 읽는 시야와 작전은 한국시리즈 5차전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3. 너무 정직했던 6차전의 선발투수 기용
5차전에서 패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SK 와이번스는 6차전 선발투수로 2차전 선발투수 였던 마리오를 기용하였다. 하지만 마리오는 플레이오프에서의 호투와는 달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라이온즈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조기 강판당한 바 있었다. 라이온즈 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마리오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은 그대로 마리오를 6차전에도 기용하였다. 정면돌파를 선택했지만 마리오는 1회초부터 연속안타를 내주더니 결국 최형우에게 희생플라이로 너무 쉽게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이만수 감독은 다른 승부수를 선택했어야 했다. 팀내 송은범과 채병용이라는 충분히 선발 투입이 가능한 자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수 감독은 너무 우직한 승부를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송은범이나 채병용이 선발로 등판했다면 6차전 경기 양상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특히나 채병용은 2승 3패로 몰리던 2003년 한국시리즈와 2009년 한국시리즈에 각각 선발과 마무리로 등판하여 팀을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마리오가 박석민에게 투런홈런을 내주면서 사실상 승부의 흐름을 라이온즈에게 넘겨준 뒤에 송은범과 채병용을 투입하였다.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와 맞붙었던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은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둔 채 맞이한 5차전에서 트윈스가 선발투수로 2차전 승리투수였던 임선동을 예고하자 속으로 승리를 직감했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것은 이미 타이거즈 타자들이 임선동에게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김응용 감독의 예감대로 타이거즈 타선은 임선동을 경기 초반부터 공략하여 승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만약에 당시 트윈스 천보성 감독이 임선동 대신에 과감하게 다른 승부수를 택했다면 상대방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명장과 평범한 승부사의 차이는 바로 이런 사소한 대목과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짚어보는 눈에서 비롯된다. 만약에 와이번스에 김성근 감독이 있었다면 6차전 선발투수는 분명 다른 선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은 2차전에 정규시즌 내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좌완투수 이승호(37번)를 기용하여 상대팀 라이온즈의 허를 찌르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아니었다. 이만수 감독은 현역시절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지 못하였다. 이만수 감독의 현역시절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 단골손님이었으나 번번히 좌절하였다. 이만수 감독의 정직한 투수리드는 상대방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되곤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 한국시리즈이다.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는 9회말 3-0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당시 LG트윈스 백인천 감독이 상대적으로 수읽기가 쉬운 이만수가 4차전에도 선발 포수로 출장할 수 있도록 팀 마무리 투수 정삼흠에게 의도적으로 이만수에게 쉬운 승부를 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이만수 감독이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독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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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내내 부상선수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이만수 감독은 나름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자평하였다. 그러나 와이번스는 2007시즌부터 내내 부상선수들이 속출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대체자원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전력의 부족함을 메워주었고, 기존에 부상당했던 핵심선수들이 복귀하게 되면 자연스레 팀 전력이 두터워지는 패턴을 보인 팀이 바로 SK 와이번스였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새롭게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들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주전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특히 계투진에서 박희수와 정우람에 대한 의존도는 너무 심하여 두 선수들을 거의 노예로 만들고 말았다. 이제 와이번스 선수들의 가을 DNA도 서서히 한계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더 이상 상대를 압도하는 끈질김과 집요함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과연 SK 와이번스 프런트가 추구하던 야구일까? SK 와이번스의 매력은 그 동안 국내 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높은 플레이와 근성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이번스는 평범한 중간계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그러한 실망감을 증폭시킨 시리즈였다. SK 와이번스는 아름다운 패자가 아니다. 반성해야할 패자이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