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프로야구 발전의 장애물인가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10-23 11:21 | 최종수정 2012-10-23 11:21


9일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잠실구장.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장면1=지난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7회말 1사 2루에서 두산 오재원이 중전안타를 때렸다. 롯데 중견수 전준우가 홈으로 질주하는 주자를 잡기 위해 공을 뿌렸는데,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되면서 포수 강민호의 왼쪽 눈을 강타했다. 강민호는 부상으로 인해 이후 열린 준PO 3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타격감각이 떨어진 강민호는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타율 7푼1리(14타수 1안타) 1타점 6삼진을 기록하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8일 잠실구장 그라운드는 울퉁불퉁했고, 잔디 곳곳이 흉하게 파여 있었다. 지난달 서울시가 스폰서로 나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때 매일 2~3경기를 치르며서 그라운드가 망가진 것이다. 서울시는 당초 고척동 야구장 개장에 맞춰 대회를 유치했는데, 돔구장으로 설계가 변경되면서 완공이 내년 말로 늦춰지자 잠실구장과 목동구장에서 대회를 진행했다.

장면2=다음달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개막하는 아시아시리즈. 한국야구위원회(KBO)관계자는 대회 개막을 앞서 일본, 대만야구 관계자들이 경기장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사직구장을 찾았을 때 안내를 하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참가국 야구 관계자들이 사직구장에 원정팀 라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걸 보고 깜짝 놀라더란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호주 리그 우승팀들이 참가하는 아시아시리즈는 한국 프로야구가 사실상 처음으로 유치한 국제대회다. 그런데 인구 1000만명에 프로팀이 3개나 있는 수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대회장소를 정했다. 11월 추위 때문에 대회를 부산이 대회 개최장소로 결정됐지만, 야구인들은 서울에 돔구장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한다. KBO는 2000년대 초중반 돔구장건립추진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서울시의 비협조와 각종 도시계획 규제에 묶겨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그리고 프로야구는 올해 관중 700만명 시대를 열었다.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선전을 펼쳐 국가의 위상을 높였고, 프로야구는 국민의 생활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야구 관계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야구의 심장 잠실구장 시설은 한국야구의 위상에 걸맞지 많게 낙후되어 있고, 새경기장 건립은 요원하며, 경기장 시설 투자에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서울시는 가외수입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구장을 헐고 그 자리에 디자인센터를 만들고 있는 서울시는 고척동에 2만2000석 규모의 돔구장을 짓고 있다. 서울시는 동대문구장의 대체구장으로 고척동 하프돔구장 건립을 추진했다. 야구열풍이 몰아친 WBC 준우승 직후인 2009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다음에는 돔구장을 만들겠다"고
프로야구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가 8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졌다. 7회말 1사 2루, 오재원의 적시타에 2루주자 김재호가 홈으로 파고들어 세이프되고 있다. 송구를 받던 강민호가 부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10.08/
했다. 그러나 고척동 하프돔은 주민들의 민원 등으로 인해 돔구장으로 설계가 변경됐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내년 말 개장한다. 당연히 새 경기장 개장을 반겨야 하는데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냉소적인 모습이다. 야구계와 상의없이 서울 외곽 고척동에 부지를 잡은 서울시가 제대로된 타당성 조사도 없이 돔구장으로 설계를 바꾸더니, 여기에 서울 연고 프로팀을 끌어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돔구장 건축비용으로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됐고, 1년 유지비가 70억원 정도다. 그러나 야구관계자들은 한 해 100억원 넘는 유지비가 필요한데도 서울시가 비용이 과도하다는 비난을 피하려 금액을 축소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당초 아마야구 전용 구장으로 추진된 고척동 구장이 돔구장으로 바뀌면서 아마야구로는 유지비용을 댈 수 없게 되자 서울시가 이를 프로구단에 떠넘기려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 서남부에 위치한 고척돔구장은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지 않는 지역이다. 주차장 시설이 제대로 마련된 것도 아니다. 프로구단이 홈구장으로 사용할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정광현 서울시 체육진흥과장은 "인근 지하철 역과 이어지는 연결통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지만, 새 지하철역을 유치하려면 500억원 정도의 비용을 서울시가 부담해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동대문구장 대체 구장이라는 당초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넥센 히어로즈가 서울시의 홈구장 이전 제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한 가운데, 두산과 LG도 불똥이 튈까봐 걱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두산과 LG 양 구단에 고척돔에서 일부 홈경기를 치러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산과 LG는 서울시 소유의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

서울시가 효용성이 떨어지는 고척돔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필요한 잠실구장을 대체한 새 야구장 건립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서울시는 그동안 잠실구장 리모델링과 새 구장 건립을 놓고 검토을 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새 구장 건립이 어렵다며 리모델링쪽으로 결론을 냈다고 한다. 야구인들이 간절히 바랐던 제대로 된 돔구장 건립을 고사하고 새 구장 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KBO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의 지자체는 프로구단을 유치하고 눌러앉히기 위해 구장까지 지어주고, 저렴하게 사용료를 받는데 서울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프로야구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2 준플레이오프 1차전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7회말 1사 2루서 두산 오재원의 적시타 때 홈 송구를 받던 강민호가 얼굴에 볼을 맞아 쓰러져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10.08.
서울시는 올해 잠실구장 광고권을 팔아 72억2000만원을 챙겼다. 또 두산과 LG로부터 경기장 위수탁료로 25억58000만원을 받았다. 광고권료의 경우 지난해 24억4500만원에서 50억원 가까이 뛰어올랐다.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지고 관중이 늘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정작 두산과 LG에 돌아가는 돈은 전혀 없다. 집주인인 서울시가 모두 챙겨가는 구조다.

서울시 관계자는 "두산과 LG가 그동안 경기장에 투자를 한 게 전혀 없다. 광고권료 배분을 이야기하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잠실구장에서 번 돈은 전액 잠실구장에 재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구단 관계자는 "집 수리를 세입자가 하는게 맞나 집주인이 하는 게 옳은 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관중을 끌어모으고 프로야구 인기를 높이는 데 서울시가 한 게 뭐가 있냐"고 했다.

서울시는 한해 약 18억원을 잠실구장 개보수에 쓰고 있다. 올해로 개장 30년이 된 잠실구장은 시설 노후화로 하수도, 전기시설 등 기본적인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의 말처럼 서울시가 잠실구장 수입금을 재투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서울시는 올 겨울에도 통상적인 개보수 공사외에 따로 계획한 게 없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경기장 건립 비용이 커지고 유지비가 상승함에 따라 지자체와 민간자본이 협력하는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메이저리그 구장 건립비 중 지자체 부담 비중이 6%에 불과했는데, 1990년대 들어 62%로 증가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홈구장으로 사용중인 프로그레시브필드는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카운티가 소유하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1994년 개장한 이 구장을 20년 장기인대로 쓰고 있는데, 연 입장관중이 185만명 미만이면 구장임대료를 내지 않는다. 관중이 185만명을 초과할 때만 티켓 1장당 72센트(약 800원)~1달러25센(약 13000원)트를 낸다. 2009년 문을 연 뉴양키스타디움은 뉴욕시 소유 부지에 세워졌다. 양키스 구단은 40년간 구장을 사용한다는 조건하에 연 10달러(약 1만1000원)의 상징적인 금액을 뉴욕시에 사용료로 낸다.

미국의 경우 지자체가 프로구단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구단이 지역을 알리고 시민들의 건전한 여가활동에 도움을 주기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서울시와 여러모로 대조가 된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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