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선장의 첫 항해는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나 KIA의 올 시즌을 '실패'라는 단어로만 규정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하다. KIA는 분명 선 감독의 부임 이후 스타일에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 못지 않게 긍정의 요소도 많이 발견됐다. 올해의 '실패'는 과연 KIA호에 어떤 쓴 약이 될 수 있을까. 올 시즌을 통해 나타난 KIA의 긍정요소와 부정요소를 살펴보자.
강화된 선발 야구, 트렌드에 경종을 울리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올해의 KIA는 전력의 근간이 한층 강해졌다고 평가된다. 에이스 윤석민이 다소 부진했던 점을 제외하면 베테랑 서재응과 '풍운아' 김진우의 부활은 향후 오랫동안 팀의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요소다. 서재응은 특유의 제구력과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마치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 하다. 특히 시즌 후반 보여준 연속이닝 무실점 신기록 달성 페이스는 향후 그가 팀 선발 로테이션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징조로 해석할 수 있다.
김진우의 복귀도 팀에는 상당한 호재다. 여러 불미스러운 개인사를 통해 야구계를 거의 떠날 뻔했던 김진우는 올해 자신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선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제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윤석민 이전에 이미 김진우는 'KIA의 미래'로 불렸던 대투수 재목이었다. 한 동안 방황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더욱 정신적인 단단함을 키울 수 있었다. 2006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10승 투수로 돌아온 김진우는 내년에 겨우 만 30세가 된다. 투수로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서재응과 김진우의 부활에 살짝 가리긴 했어도 팀의 에이스는 여전히 윤석민이다. 올해의 부진은 어떤 면에서는 윤석민에게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윤석민마저 본색을 회복한다면 내년의 KIA는 역대 최강의 3선발진을 갖출 수 있다. 여기에 재계약이 유력한 두 명의 외국인 선발 앤서니와 소사까지 가세할 경우 KIA 선발마운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질 전망이다.
특히 KIA는 올 시즌 막판 4연속 선발투수 완투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최근의 유약한 선발투수 트렌드에 굵직한 경종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 완투형 투수가 사라지고, 선발들이 암암리에 '5이닝-투구수 100개'를 목표점으로 하던 시기에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들을 연이어 보여주며 '야구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런 선 굵은 야구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KIA가 저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비 불안과 허약한 타선, 불안한 불펜. 3대 악재를 극복하라
냉정히 말해 선발진이 더욱 강해졌다는 면을 제외하면 KIA는 올해 뚜렷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수주에서 모두 지난해에 비해 능력치가 하락한 듯한 인상이다. 실제 기록에서도 이는 쉽게 입증된다. 3일까지 치른 131경기를 기준으로 2011년의 KIA는 팀타율 2할7푼1리에 105홈런 622득점을 기록했고, 실책은 65개밖에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팀타율이 2할5푼6리로 떨어졌고 팀홈런은 절반 수준인 54개, 팀득점은 545점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실책수는 88개로 크게 늘어났다.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확실하게 약점이 부각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개선의 포인트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선 감독은 올해 가을 마무리캠프부터 지옥 훈련을 예고했다. 5일 훈련-1일 휴식의 일정을 통해 수비와 공격에서의 집중력을 확실히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유난히 많았던 부상선수들에 대한 대비책도 충분한 체력 훈련을 통해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더해 불펜진의 강화도 '강한 KIA 만들기' 계획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KIA는 올해 역시 불펜에서 고질적인 난조를 보였다. 선발의 힘이 강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불펜의 힘은 강화되지 못했다. 급기야 시즌 중 영입한 베테랑 최향남을 마무리로 쓰기도 했다. 일정부분 효과를 봤지만, 장기적 측면에서는 결코 좋은 기용법이 아니었다는 평가다.
그래도 희망의 요소는 발견했다. 신인 박지훈과 홍성민이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 시절 강한 불펜을 만들어냈던 선 감독은 이들에게 '2000구 투구'를 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많이 던져봐야 스태미너와 제구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이번 가을캠프와 내년초 스프링캠프를 통해 올해 드러난 '3대 악재'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냐가 '선동렬호 2기'의 성패를 가늠할 전망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