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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배팅볼투수 베스트3 안에 들 걸요?"
도대체 얼마나 던진 걸까. 한 감독대행은 "사실 다른 배팅볼투수에 비해 빨리 던지는 편이다. 한 박스가 250개 정도 되는데 한 박스 던지고 좀더 던지니까 보통 300개 정도 던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코치들은 이미 감독대행의 체면을 생각해 배팅볼을 그만 던지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한 감독대행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배팅볼을 꼭 던져야만 하는 걸까.
한 감독대행은 잠시 뒤 "내가 던지지 말란 법은 없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배팅볼투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제구가 되지 않나. 타자들도 치기 좋은 데 던져준다고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한 감독대행은 배팅볼투수 출신이다. 동아대 1학년 때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야구를 그만뒀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등, 야구와 관계없는 일만 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 천안 북일고 시절 은사였던 김영덕 감독의 부름으로 87년 배팅볼투수로 빙그레 유니폼을 입었다.
한 감독대행은 배팅볼투수로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3개월 만에 테스트 끝에 연습생이 됐다. 배팅볼이 그를 통산 120승을 올린 인간승리의 산 증인으로 만든 것이다.
그에게 배팅볼은 같하다. 선수 땐 팔에 칼을 댄 적이 없었지만, 코치가 된 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선수 시절과 달리 근육량이 조금 줄어든 뒤에도 배팅볼을 던지다 예전부터 돌아다니던 뼛조각이 통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 감독대행은 취재진 앞에서 팔을 들어 굽히는 동작을 취했다. 팔을 굽히면 쉽게 머리에 닿는 왼 팔과 달리 오른 팔은 머리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수술 후유증이다. 수술 후 금세 배팅볼을 던지기 시작하다 보니 완벽하지 않은 팔 각도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아직도 전화통화를 3분 이상 하면 팔이 저리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배팅볼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배팅볼을 던지지 못하면 코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저한테 배팅볼은 큰 의미가 있기도 하잖아요."
목동=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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