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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스 유니폼을 입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대호(30).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11시즌 동안 통산 타율 3할9리,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타자지만, 이대호가 지난 겨울 일본 진출을 결정했을 때 물음표를 단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았던 많은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 진출했지만, 야구 토양이 다른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구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 또한 2004년(지바 롯데) 타율 2할4푼, 14홈런, 50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었다. 이병규는 2007년(주니치) 타율 2할6푼2리, 9홈런, 46타점, 김태균은 2010년(지바 롯데) 타율 2할6푼8리, 21홈런, 92타점을 기록했다. 이범호는 2010년(소프트뱅크) 1군 경기 48게임 출전에 타율 2할2푼6리, 4홈런, 8타점에 그쳤다. 타자 중에서는 김태균 정도가 데뷔 시즌 그럭저럭 망신을 당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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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대호는 달랐다. 데뷔 첫 해부터 팀의 간판 선수로 맹활약을 펼치며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일본진출을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일본야구를 읽고 완벽에 가깝게 적응하는 모습이다.
이대호는 25일 현재 111경기 전 게임에 4번 타자로 나서, 타율 2할9푼4리(6위), 20홈런(공동 1위), 75타점(1위)을 기록하고 있다. 소속팀 오릭스는 물론, 퍼시픽리그를 넘어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부를만 하다.
시즌 초반 홈런이 안 터져 걱정했는데, 개막후 17경기 만에 1호 홈런을 기록한 뒤 상위권으로 치고나갔다. 이쯤되면 한국인 선수 첫 시즌 최고 성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대호의 고군분투 속에서도 오릭스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오릭스는 25일 세이부전에서 5대10으로 패해 클라이막스 시리즈 자력 진출이 무산됐다. 퍼시픽리그 6개 팀 중 3위 안에 들어야 포스트 시즌에 나갈 수 있는데, 리그 소속팀 중 가장 먼저 60패를 기록하며 사실상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소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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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가 약체 오릭스가 아닌 팀 전력이 좋은 팀에서 뛰었다면 어땠을까. 좋은 팀 분위기, 좋은 타선과 어우러져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릭스는 팀타율 2할4푼4리로 리그 꼴찌, 358득점으로 5위에 처져 있다. 타격이 좋은 팀에 있었다면 상대 투수의 견제가 분산됐을 것이고, 앞선 타자들의 출루율에 따라 타점 찬스를 더 자주 잡았을 것이다.
오릭스는 요미우리, 한신, 주니치 등이 소속된 센트럴리그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퍼시픽리그에서도 최약체 팀이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딱 한 번 2008년 리그 2위로 클라이막스 스리즈에 나갔다. 2008년 외에 무려 11년 간 B클래스(리그 4~6위)에 머물렀고, 최근 10년 동안 5번이나 최하위에 그쳤다. 이대호는 약체 오릭스의 체질을 바꿀 수 있을까. 혼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