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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잔에 잔 높이의 반 정도 가량의 물이 있는 상황을 한번 가정해보자. 이를 보며 어떤 사람은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아있다'고 해석한다. 똑같은 현상을 이처럼 정반대로 해석하는 이유는 각자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결과물은 크게 달라진다. '발상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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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주는 지난 8일, 2군에 내려간 지 정확히 46일 만에 1군에 복귀했다. 2군에 있는 동안 오른손 중지 염증도 치료했고, 실전에도 나가며 경기 감각을 새롭게 끌어올렸다. 이렇게 40여 일을 보내며 어느 정도 복귀 준비가 갖춰졌다고 판단한 KIA 코칭스태프는 결국 한기주를 1군에 불러올렸다.
한기주가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는 것은 KIA의 입장에서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최향남이 맡고 있지만, 사실상 KIA 선동열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무리 투수는 한기주다. 때문에 한기주가 재활을 마치고 1군에 돌아온 것은 KIA가 진짜 마무리를 갖추게됐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맞다.
이런 판단은 두 번째 등판에서 그대로 현실화됐다. 한기주는 16일 잠실 LG전에 등판해 2이닝 동안 홈런 1개를 포함해 4안타 2 4사구 2삼진으로 무려 4실점(3자책점)을 기록했다. 팀이 2-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 '추격조'로 투입된 한기주가 이렇게 대량실점을 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KIA는 LG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날 역시 한기주의 구속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힘있게 던져도 140㎞ 대 초반에 그칠 뿐이었다. 과거 한기주는 150㎞ 중반까지 나오는 포심패스트볼을 무기로 타자를 윽박지르던 유형의 투수다. 제구력은 예전에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구속마저 느리게 나오니 LG 타자 입장에서는 공략하기 쉬웠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한기주는 이날 이상하리만치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안타를 맞은 이후 수비를 하는 움직임에서도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낯설어하고,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 영향으로 파악된다.
한기주의 야구, 아직 많은 날이 남았다
그간 한기주의 행보를 보면 이런 좌절과 당황스러움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2006년 역대 신인최고인 '1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한기주는 처음부터 화제와 주목의 대상이었다. 입단 첫 해 10승(11패)을 거두며 화려하게 프로의 문을 연 한기주는 2007년부터는 마무리로 변신해 2년 연속 25세이브 이상을 달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기주의 성공시대는 활짝 열려있는 듯 했다.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한기주의 야구는 시련을 맞는다. 팔꿈치 부상으로 2009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한기주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약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지난해 후반기에 1군에 복귀했지만, 부상 이전의 불꽃같던 강속구는 쉽게 보기 힘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부상으로 인한 좌절을 겪으면서 한기주는 많은 마음고생을 해왔다. 그래도 고통스러운 재활을 버틴 것은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마운드에 서서 타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꿈꾸며 힘든 몸을 달랬다.
그런데 이런 고통의 과정을 겪고서도 막상 마운드에서 마음먹은 대로 공을 던질 수 없게되자 큰 상실감이 밀려온 것이다. KIA 코칭스태프도 걱정이겠지만,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한기주 본인이다. 16일 마운드에서 보인 한기주의 당황스러운 표정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벌써부터 좌절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비록 지금 당장의 구속이 안나오더라도 한기주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25세의 우완 정통파 투수에게 거는 기대는 아직도 크다. 게다가 KIA는 김진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한번 기대를 품은 선수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팀이다. 선 감독도 여전히 한기주의 잠재력에 매력을 느끼며 마무리 보직을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기주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구속이 당장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지금 당장의 패배나 좌절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키울 때 마운드에서의 경쟁력도 한층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