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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되는 집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8-08 03:14 | 최종수정 2012-08-08 06:42


두산 김진욱 감독은 쉬라고 하면 더 열심히 하는 선수들의 훈련자세 때문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경기에 앞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 감독.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흔히 학생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꼭 직면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몸상할까 걱정되니 공부 그만하고 일찍 자거라." 이른바 '상위 1%'의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 입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다.

나머지 99%의 학부모들은 이런 말을 자녀에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오지 않아 냉가슴을 앓는 게 보편적인 현실이다.

요즘 프로야구판에도 '상위 1%' 자녀를 둔 부모 심정과 비슷한 처지의 행복한 감독이 있다.

두산 김진욱 감독이다. 두산은 올시즌 하반기 가장 주목받는 팀에 속한다.

올스타전 브레이크가 끝나고 하반기가 본격 시작된 이후 7일까지 승률 6할9푼2리(9승4패)로 8개 구단 가운데 최고의 성적이다.

지난 주말 KIA와의 3연전에서 2연패의 위기에 빠지는 듯했지만 7일 한화전에서 10대5 완승을 거두며 폭염에 강한 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선두 삼성은 2.5게임 차까지 추격했으니 넌지시 선두 등극을 엿보는 기분좋은 상황을 맞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두산이 무더위에 강한 팀으로 변모한 비결은 뭘까. 김 감독에게는 기분좋은 '항명(?)'이 있었다.

김 감독은 지난 2일 삼성과의 주중 3연전 마지막 날을 잊지 못한다. 이날은 올시즌 두 번째로 삼성전 싹쓸이를 기록하며 하반기 상승세의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이 덕분에 두산은 올시즌 삼성전 11승3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며 정규리그 우승의 막강 경쟁자인 삼성을 상대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았다.

두산 선수들이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자겠다는 '상위 1%'의 자녀같은 행동을 보인 결과였다.

두산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혹서기 선수들의 훈련량을 조절하는 중이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녹초가 되는 무더위 아래에서 평소처럼 훈련을 하면 체력만 떨어지기 때문에 경기전 훈련시간을 단축하고, 배팅수와 펑고 횟수를 줄여 체력소모를 최소화 한다.

김 감독은 2일 삼성전에도 대구지역 체감온도가 섭씨 40도를 훌쩍 넘어가자 경기장 도착시간을 20분 늦추고 훈련량도 줄이라고 지시했다.

"얘들아, 오늘은 너무 더우니까 워밍업을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각자 자율적으로 쉬면서 경기를 준비하거라."

하지만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단다. "제발 공부 그만하고 빨리 자라"고 하는데도 부득부득 책을 펴드는 우등생처럼 오히려 훈련을 더 열심히 하더란다.

김 감독은 "배팅훈련으로 땀을 비오듯이 흘렸는데 잠깐 휴식하는가 싶더니 수비훈련을 하겠다고 뛰어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쟤들 미쳤나?'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무더위에 쉬게 해주고 싶어 자율을 줬는데 되레 열심히 하더라"고 말하는 김 감독의 표정에서는 제자들의 기특한 '항명'이 전혀 싫지 않다는 눈치가 가득했다.

김 감독은 두산이 무더위 하반기에 유독 강해진 것에 대해 "딱히 비결은 없는 것같다"고 말했지만 선수들의 자발적인 훈련자세가 숨은 비결이었던 것이다.

요즘같은 무더위라면 1분이라도 더 쉬면서 요령을 피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두산 선수들은 정반대였으니 감독으로서는 기특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김 감독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하다가 코피나 흘리지 말아야 할텐데…."

잘되는 집안은 행복한 고민이 꼬리를 문다고 했던가. 김 감독은 요즘 영락없는 잘되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대전=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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