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김시진 감독을 화나게 했나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8-08 09:27 | 최종수정 2012-08-08 09:27


넥센 김시진 감독과 SK 이만수 감독이 7월 31일 경기를 앞둔 문학야구장에서 만나 서로를 때리며 장난을 치고 있다. 58년 동갑내기인 두 감독은 한양대 동문으로 절친이다. 인천=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54)은 평소에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지 못하고, 의견 차가 있으면 차분하게 설명해 이해를 구하려는 유형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질문을 하면, 상대편에게 전후사정을 충분히 설명하다보니 말이 길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려고 과장을 하는 법도 없다. 독하게 선수를 다그치는 스타일도 아니다. 싱거울 정도로 담백하다는 평가다.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다보니 소심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야구인들에게 김시진 감독 하면 '온화하고 선한 사람, 악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야구인, 투수 조련의 달인' 정도가 될 것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체적인 평판이 이렇다.

경기중에 다소 억울한(?) 판정이 나와도 김 감독은 가급적 크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심판도 선후배로 얽힌 야구인이고, 심판도 사람이기에 충분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008년 한국야구위원회(KBO)경기 감독관을 지낸 김 감독은 "구단에 있을 때는 오해를 하기도 했는데, 경기 감독관을 하면서 심판이 나쁜 생각을 갖고 오심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는 오심이라도 이미 벌어진 일이고, 번복될 가능성이 없다면,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을 도모하자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데 평소 김 감독의 성향을 떠올려보면, 전혀 상상이 안 가는 일이 일어났다. 7일 광주구장에서 벌어진 KIA전 7회 사구 문제로 항의를 하다가 퇴장을 당한 것이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퇴장을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박헌도 타석 때 KIA 투수 한승혁이 던진 공이 몸쪽으로 들어왔고, 주심은 사구를 선언했다. 공이 유니폼을 스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선동열 KIA 감독은 선수가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사구가 아니라고 주장을 했고, 심판진은 잠시후 사구를 취소했다.

김 감독이 퇴장을 당한 이유는 이날 심판진의 조장인 2루심 최규순 심판원을 손을 밀쳤다는 것. 그런데 TV 화면을 자세히 보면 최 심판원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내가 흥분해서 한 발 다가가자 최 심판원이 무의식적으로 막으려고 손을 내밀었고, 나도 모르게 밀쳤다"고 했다. 1-0으로 앞서다가 1-2로 경기가 뒤집힌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김 감독이 심판의 몸에 손을 댄 것은 잘못이지만, 심판진의 매끄럽지 못한 판정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사구상황도 TV 중계화면상 유니폼을 스친 것으로 보였다.

무엇이 '순한 양'같던 김 감독을 화나게 한 것일까. 누적된 오심에 대한 불만이 무의식적으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 심판은 거의 모든 팀의 적이라고 보면 되다. 대다수 구단의 대다수 선수가 자신의 입장에서 판정을 받아들이다보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또 오심은 심판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오심 덕을 봤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득보다 실을 크게 생각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올시즌 유독 히어로즈가 오심 피해를 자주 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히어로즈 구단 관계자뿐만 아니라 야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모 구단 단장은 "예전에 비해 오심이 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히어로즈가 특히 오심 피해를 많이 본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상대적으로 구단 힘이 약한 히어로즈를 심판진이 조금 편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판들 사이에 은연중에 '히어로즈는 꼴찌를 해도 되는 팀, 재벌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다른 팀에 비해 성적 부담이 적은 팀, 오심이 나와도 롯데 KIA 등 인기팀에 비해 팬이 적어 상대적으로 비난이 적게 나오는 팀, 그래서 잘못된 판정이 나와도 감수해줄 수 있는팀'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이런 분위기를 체험해온 김 감독이다.

최근 심판들의 자질, 능력에 물음표를 다는 야구인들이 많다. 전 경기가 TV로 생중계되고, 이전에 비해 중계카메라 수가 늘면서 플레이 하나 하나가 클로즈업 되어 안방을 찾아간다.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면 여러 각도에서 잡은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오심이 낱낱이 파헤쳐져 심판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라운드의 판관이 살아남으려면 능력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김 감독은 7일 퇴장에 대해 "KIA 팬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오심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선발 20승을 두차례나 기록한 김 감독은 4년째 히어로즈를 이끌고 있다. 만년 하위팀 히어로즈는 전반기에 최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비웃으며 신바람을 냈다. 하지만 후반기 부상자가 잇따르고,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들이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면서 고전하고 있다. 치열한 4강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8월 초 혹서기에 히어로즈는 다시 4강 진입이냐, 아니면 하위권 고착화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와중에 김 감독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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