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이 바라본 이종범 은퇴 "3~5년 더 할 줄 알았는데"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4-02 14:14


이종범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이 알려진 후 팬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1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시범경기 한화와 기아의 경기에서 한 여성팬이 이종범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4.01/

처음에 (이)종범이가 은퇴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지만 굉장히 섭섭했다. 지난 주 목요일과 금요일(3월29~30일) 삼성-KIA전 방송 해설을 위해 대구구장에 갔었는데, 해설 준비에 바빠 종범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금요일 경기는 비로 취소돼 얼굴 볼 기회가 없었다. 경기 전에 KIA 덕아웃에 가도 종범이를 보기 어려웠다. 밖으로 잘 안 나오는 눈치였다.

물론, 프로구단이기에 KIA가 냉정히 판단을 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종범이는 여느 선수와는 다르다. KIA 타이거즈의 상징적인 선수이고,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다. 겨우내 열심히 시즌을 준비했을텐데, 종범이가 개막전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KIA의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1년 후배인 종범이를 좋아했지만 한 번도 같은 팀에서 함께 하지 못해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편집자 주=광주광역시 출신인 이종범은 광주일고-건국대를 거쳐 해태-주니치-KIA에서 선수생활, 대구광역시 출신인 양준혁은 대구상고-영남대를 거쳐 삼성-해태-LG-삼성에서 활동) 보통 뛰어난 선수를 이야기할 때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선수라고 하는데, 종범이는 여기에 센스와 강한 어깨, 상황판단 능력, 지능적 플레이를 더해 '7박자'를 갖춘 선수였다. 감독이 가장 좋아할 유형의 선수였다. 1993년 함께 데뷔해 그 해 내가 신인왕을 탔지만 종범이가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다. 그때 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감독이고 양준혁과 이종범, 둘 중 한 명을 고르라면 이종범을 선택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투수는 선동열, 홈런은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종범이는 그런 선수였다.


양준혁 SBS 해설위원이 지난달 29일 대구구장에서 KIA 선동열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대구=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3.29/
종범이가 올해 뿐만 아니라 3~5년은 더 해주길 바랐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선수 수명이 너무 짧다. 메이저리그에는 50세가 된 좌완 투수 제이미 모이어(콜로라도 로키스)가 있다. 47세인 야마모토 마사(주니치 드래곤즈)가 어제(1일) 선발 등판했다는 기사를 봤다. 고참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옛날 생각만 한다고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국내 야구계에는 고참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선수를 그만두면서 했던 '선입견이 나의 라이벌이었다'라는 말처럼, 나이 많은 선수는 자주 다치고 힘이 떨어진다는 선입견 말이다. 젊은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지나치다.

베테랑 선수도 젊은 선수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굥은 선수도 부상할 수 있고,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고참 선수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정말 종범이가 오랫동안 선수로 뛰기를 바랐다. 후배들이 저렇게 오래 하는 선배가 있구나, 나도 저 선배처럼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귀감이 되고 목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했다. 종범이는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였는데 안타깝다.


지난달 29일 시범경기 삼성전에 앞서 이승엽과 악수를 하고 있는 이종범. 대구=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어차피 은퇴를 결정했으니, 이제 '제2의 야구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본인의 판단에 따라 야구 유학을 떠나거나, 아니면 지도자로 나서게 될 것이다. 내가 지켜봐 온 종범이는 해설을 해도, 지도자로 나서도 다 잘 할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다만 야구를 먼저 그만둔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만 바라보고 살아왔기에, 매일 해온 야구이기에, 더이상 야구를 못 한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한동안 공허하고 허탈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야구가 너무 그리워 혼자 울기도 했다. 힘들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무조건 움직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종범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해 12월 KBS 2TV 토크쇼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다. 김응용 감독님이 출연한다고 하기에 종범이랑 함께 깜짝 손님으로 출연했다. 그때 녹화가 끝나고 "다음에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는데, 종범이가 그 후 전지훈련이나 뭐다 바빠서 얼굴을 못봤다.

종범이의 은퇴, 참 아쉽다. 양준혁 SBS 야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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