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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과연 선발로 활약할 수 있을까.
과제1: 왼손타자 극복
LG는 라인업에 좌타자가 유독 많은 팀이다. 상대 왼손투수 상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른손타자들을 중용하고 있지만, 박찬호 같은 오른손투수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날 LG는 라인업에 왼손타자 6명을 내세웠다. 1번 이대형-2번 이병규(배번7)-3번 이진영-5번 박용택-7번 서동욱(스위치히터)-9번 오지환이 나왔다. 이병규(배번9)가 컨디션 조절 차 휴식을 취한 게 다행일 정도.
하지만 3번타자 이진영은 이를 비웃듯 초구로 들어온 바깥쪽 직구를 결대로 툭 밀어쳤다. 깔끔한 좌전안타. 첫 실점을 허용했다. 왼손타자를 상대 해법을 고민해야 할 모습이었다. 박찬호는 정성훈과 박용택을 각각 유격수 땅볼과 3루수 땅볼로 잡아내며 긴 1회를 마쳤다. 수비의 도움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
과제2: 상대타자 파악하기, 방심은 금물
이날 박찬호의 직구 최고구속은 142㎞. 대부분 140㎞ 부근에서 형성됐다. 볼의 빠르기만으로는 위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보다 문제는 변화구였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던진 변화구가 얻어맞는 일이 있었다.
박찬호는 2회 LG 유강남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지난 21일 롯데 황재균에게 맞은 홈런 이후 두번째 피홈런이다. 볼카운트 2-0에서 던진 커브가 한복판으로 높게 들어갔다. 완전히 치기 좋은 공이었다. 방망이 중심에 맞은 공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렸고,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좌익수 최진행이 이내 쫓아가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잘 맞은 홈런이었다.
2년차 유강남이 아무리 신인급 선수라고 하지만, 박찬호는 너무나 쉽게 홈런을 허용했다. 유강남은 방망이 힘은 원체 좋은 타자다. 박찬호는 홈런을 허용한 뒤 어이가 없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본인도 정규시즌에서는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박찬호는 3회에도 LG의 왼손타자 라인을 상대했다. 1사 후 이병규와 이진영에겐 체인지업을 던지다 깔끔한 안타를 허용했다. 밋밋하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LG 타자들은 빠른 카운트에서도 지체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1사 1,3루 위기. 다음 타자 정성훈은 볼카운트 2-1에서 직구를 건드려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좋은 카운트임에도 직구가 치기 좋은 높이로 들어간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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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4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7,8,9번 하위타선이었지만, 왼손타자가 2명이 있었고 나머지 1명은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낸 유강남이었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인 124승은 괜히 나온 기록이 아니었다. 박찬호는 서동욱에게 느린 커브로 삼진을 잡아낸 뒤 유강남에게 또다시 커브 2개를 연달아 던졌다. 어디 한번 칠테면 쳐봐라는 식이었다. 볼카운트 2-0에서 던진 마지막 공은 직구. 몸쪽으로 꽉 찬 직구에 유강남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자신이 홈런을 맞았던 공을 재차 던져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왼손타자 오지환을 삼진으로 돌려세울 땐 1회나 3회와 정반대로 갔다. 박찬호는 앞서 왼손타자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공을 던지다 얻어맞았다. 이번엔 피해가기 보다는 정면승부를 택했고, 오지환의 배트를 이끌어낸 뒤 마지막 공은 또다시 바깥쪽으로 꽉 찬 공을 던졌다. 양쪽 코너워크가 자유로웠고, 몸쪽의 비율이 다소 높은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 다소 많은 공을 던졌지만, 5회엔 맞춰잡는 피칭으로 단 9개의 공만 던지며 이닝을 마쳤다. 투구수 관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6회 4안타를 내주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5회 완벽하게 보여줬던 좌우 코너워크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무사 만루에서 서동욱이 친 체인지업은 가운데서 밋밋하게 떨어졌다. 크게 힘을 싣지 않고, 툭 쳤는데도 우중간으로 향하는 안타가 됐다. 이날 대체로 말이 듣지 않았던 체인지업을 다시 던져봤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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